“팀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이숭용 코치)
“적응하는데 힘이 됐지만 선수 때도 그렇고 아직도 코치님이 어려워요.”(유한준)
“계약 후 한준이에게 바로 전화가 와서 식사를 했다.”(이숭용 코치)
“가장 먼저 전화한 건 넥센 쪽이다. kt 쪽에 처음 전화한 분이 코치님이다.”(유한준)
10년 가깝게 현대-넥센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선후배가 사제지간으로 다시 만났다. 이숭용(45) kt 타격코치와 유한준(35)이 한배를 탔다. 이 코치가 지난해 먼저 지도자로 새 둥지를 텄고, 유한준이 FA 자격을 얻어 뒤따랐다. 둘의 재회는 이 코치가 넥센에서 은퇴한 2011년 이후 5년 만이다.
유한준에게 이 코치는 현역 시절 쉽게 쳐다볼 수 없는 대선배였다. 유한준이 현대에 2004년 입단했고, 이 코치는 10년 전 태평양 유니폼을 입었다. 현대와 태평양은 넥센 전신이다. 유한준이 처음 프로에 올 당시 이 코치는 팀의 주축이었고 주장까지 맡아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반면 유한준은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한 기대주에 불과했다.
이 코치가 현역에서 은퇴했던 2011년까지 유한준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14년에서야 처음으로 타율 3할 20홈런을 넘어서더니 지난해 타율 0.362 23홈런 116타점으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 결과 FA 자격을 얻어 4년 총액 60억원에 이 코치가 있는 kt와 계약했다. 유한준은 계약 후 곧바로 이 코치에게 전화를 걸어 “한 팀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고 알렸고, 이 코치는 바로 식사 약속을 잡아 새로운 팀 적응에 대한 조언을 했다.
어느덧 함께 호흡을 맞춘 지 시간이 훌쩍 흘러 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있다. 미국 LA 인근 샌버나디노 캠프 장소에서 1일(한국시간) 만난 이 코치는 “한준이를 다시 만난 건 정말 좋은 일”이라며 “빨리 새 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친형처럼 살갑게 대했지만 정작 유한준은 “선수 때도 그렇고 아직도 코치님이 어렵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다음은 5년 만에 같은 팀 유니폼을 입은 둘의 대화다.
-넥센 시절부터 현재의 kt까지 5년 만에 재회한 소감은.
이숭용 코치(이하 이) “한준이를 다시 만난 건 나한테 정말 좋은 일이다. 오랜 시간 함께 선수 생활을 해서 성향을 잘 알고 있고, 어느 누구보다 성실하다. 빨리 새 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 일찍 잘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내가 은퇴하고 방송 해설을 할 때부터 점점 무시무시한 선수가 됐다. 후배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는 선배다. 심우준이나 김민혁에게 ‘한준이가 왜 아침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꼬박 하는지 잘 봐라’는 말을 해줬다. 선수들은 코치가 말하는 것보다 선배의 행동 하나, 하나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유한준(이하 유) “선수 때도 그렇고 아직도 어렵다. 현대 입단 당시 팀의 거목이었고, 주장도 맡았다. 카리스마 가득했던 그 때 잔상이 남아있다. 그래도 10년을 함께 있었던 만큼 새 팀 kt에서 의지를 많이 할 수 있어 좋다.”
-kt에서 첫 인사는 어떻게 나눴는지.
이 “계약 후 한준이에게 바로 전화가 와서 식사를 했다. 야구는 똑같지만 한 팀에서만 오래 뛰다가 새 팀으로 가면 적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성실한 친구니까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잘하는 스타일이다. 선수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인데 ‘네가 할 것만 하면 된다. 편하게 해라. 운동은 이기적으로 해도 된다’고 말해줬다.”
유 “코치님에게 가장 먼저 전화한 건 아니다. 넥센 쪽에 먼저 했고, kt 쪽에 처음 전화한 분이 이 코치님이다. 선배의 경험담을 듣고, 팀 적응에 많이 도와주겠다는 얘기를 했다. 롤모델이었던 선배의 말을 들으니 더욱 신뢰가 갔다.”
-오랜 만에 다시 만났는데 서로 어떤 점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지.
이 “내가 선수 때 봤던 그 선수가 아니다. 자기 만의 타격이 확실히 정립됐다. 타격코치로서 특별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잘 안 풀릴 때 비디오 분석 정도만 같이하면 될 것 같다.”
유 “현역 때나 지금이나 선수들을 똑같이 잘 배려해준다.”
-지금 대화하는 것을 볼 때 선수가 코치를 정말 어려워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유 “아직 코치님의 선수 시절 이미지가 남아 있긴 하다. 그렇다고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어려운 건 아니다. 오해는 말아달라.”
이 “누가 보면 내가 집합이라도 거는 줄 알겠다. 한준이는 선수와 선수로 처음 만났기 때문에 더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코치 보직은 선수 때와 다르다. 코치는 언제나 선수의 편이다.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힘을 실어주는 자리다. (박)경수는 한준이보다 어린데 코치와 선수로 처음 만나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고 잘 다가온다. 한준이도 그래야 할 텐데.”
-사제지간으로 서로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 “kt에 와서도 잘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지금도 물론 잘하고 있다. 후배들이 ‘유느님’이라고 부르며 따른다. 한준이가 신생 팀의 한 축을 맡아 아마추어 선수들이 ‘kt는 정말 오고 싶은 팀’이라는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유 “지금처럼 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계속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코치님은 나를 매우 잘 안다. 생활 면이나 운동 면까지. 입단 초창기에 이숭용 선배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만큼 신생 팀에서 후배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개인 성적은 어느 정도를 내야 만족스러울 것 같은지.
이 “기록 수치보다 부상 없이 뛰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FA 계약에 따른 부담감은 있을 것이다. 다치지만 않고 뛴다면 타격은 물이 올랐기 때문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또 한번 만들 것으로 본다.”
유 “중심 타자로서 책임감이 있다. 팀에 도움이 되려면 지난 2년간 했던 것보다 더 잘해야 한다.”
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수치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 멘토 역할만 잘해주면 된다.”
유 “일단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멘토도 있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당당한 선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리고 언젠가 코치님이 편해질 날도 오겠죠?”
LA=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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