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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외면했어도… 선생님은 이미 ‘참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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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외면했어도… 선생님은 이미 ‘참스승’

입력
2016.03.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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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억울해” 아내는 눈물만

세월호에서 학생들을 구조하다가 의식을 잃은 뒤 살아서 뭍으로 나온 죄책감에 목을 맨 단원고 교감의 순직이 끝내 인정되지 않았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고(故) 강민규(당시 52세) 전 단원고 교감의 부인 이미희씨가 “남편의 죽음을 순직으로 봐달라”며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1심부터 순직은 한번도 인정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망인의 자살 원인이 된 생존자 증후군은 구조작업 뒤 생존자로서 받은 정신적 충격과 자신만 살아왔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자살 경위나 유서 등을 보면 구조자가 아닌 생존자나 목격자로서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결과라는 것이다. 2심과 대법원도 이를 수긍했다. 현행법상 순직공무원이 되려면 ‘생명ㆍ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입은 위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한 경우’여야 한다.

부인 이씨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가슴이 미어지는 억울함은 풀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분은 책임감이 강한 교육자였다. 당뇨를 앓던 분이 구조하다가 기력이 없어 실신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학생들을 두고 먼저 나왔을 리 없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수학여행 인솔책임자였던 강 교감은 세월호 참사 당일 학생들을 구조하다가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었다. 20여명을 구조했었다고 생존자 일부가 전했다. 그 후 헬기로 구조된 강 교감은 경찰에 출석해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고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으로 달려가 제자들의 주검 수습 비보와 학부모의 절규를 들었다. 다음날 밤 교장 등 교사 10여명이 단상에 올라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본 뒤 그는 말 없이 사라졌다. 그는 이튿날 오후 체육관 뒷산 소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지갑에서 유서가 나왔다.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벅차다.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

이씨는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공무상 사망이 아닌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전국 교사 2만1,989명이 같은 뜻으로 탄원서를 냈다. 수많은 교사, 함께 한 제자들의 마음 속에서 그는 직무를 다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 자명했지만, 법의 잣대에서 그 죽음의 형태가 순직 요건에 해당하지 않았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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