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3월 3일
미 극동공군사령부 소속 딘 헤스(Dean Hess, 1917~2015) 중령은 6ㆍ25전쟁 중 F-51D 머스탱 전투기로 250여 회 출격했고, 한국 공군 창설 작전(일명 ‘Bout One’) 책임자로 활약했다. 그는 50년 말 1ㆍ4후퇴의 혼란기에 C-47 수송기 15대를 동원, 서울 각 고아원에 수용돼 있던 전쟁 고아 950여 명과 보모 등 직원 80여 명을 안전지대인 제주도로 안전하게 피난시켜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알려졌고, 그 공로로 한ㆍ미 양국에서 무공훈장 등을 탔다.
미국 오하이오 출신인 그는 41년 메리에타 칼리지 신학 전문인과정을 졸업, 클리블랜드 교회 목사로 서임됐다. 그 해 11월 진주만 피습 사건이 터졌다. 그는 공군에 입대, P-47 전투기 조종사로 프랑스 전선에 투입돼 모두 63차례 출격했다고 한다. 2차대전 종전 후 예편했다가 48년 7월 현역으로 복귀했고, 연합군 점령지 일본에서 근무하던 중 한국 전선에 투입됐다.
‘영웅’서사는 부풀려지곤 한다. 그가 작전 후 부대로 복귀할 때 전투기에 전쟁 고아를 태워오기도 했다는, 믿기 힘든 얘기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1ㆍ4후퇴 때 수송대를 편성해 서울의 전쟁 고아 1,000여 명을 우선 대피시킨 사실은 여러 차례 국내 언론에도 보도됐고, 56년 자서전 ‘Battle Hymn 전쟁 송가’의 인세 전액을 한국 전쟁고아 후원 기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책을 각색한 같은 제목의 영화(록 허드슨 주연)도 이듬해 개봉됐다. 영화 속 그는 자서전에서보다 더 ‘영웅’이었다고 한다. 그는 65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6ㆍ25전쟁 베테랑으로 제대 후 지역사회운동가가 된 조지 드레이크(George F. Drake)라는 이가 2004년 와이오밍의 한국전쟁 아동 희생자 추모단체 홈페이지에 ‘헤스: 기만적 영웅(Fraudulent Hero)’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요지는 그가 전쟁고아 대피 작전(Operation of Kiddy Car Airlift)의 공을 가로챘다는 거였다. 실질적인 주역은 공군 군목 러셀 블레이스델 중령과 멀 스트랭 하사였고, 헤스의 역할은 제주도에 고아 수용시설을 마련해준 게 전부라는 거였다. 드레이크는 “헤스는 그 작전을 계획하지도, 지휘하지도, 참여하지도, 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연기시키려고 했다”고 썼다. 2000년 블레이스델은 뒤늦게 작전의 공을 인정받았지만, 스트랭은 98년 숨졌다. 헤스는 지난해 3월 3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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