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신기록 세우며 종료
“법안 처리는 뒷전인 채…”혹평도
역사에 최장 필리버스트 기록과 함께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더불어민주당이 1일 밤 테러방지법 처리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지만 마지막 주자인 이종걸 원내대표가 다음날 아침부터 12시간 넘게 발언을 이어가는 바람에 본회의가 지연되면서 국회가 하루 종일 멈춰 섰다.
이 원내대표는 2일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에 대한 사과로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는 오늘 (테러방지법) 수정안이 될 때까지 버티겠다”며 “갑작스런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으로 상처받은 국민들이 용서할 때까지 이 자리에 서 있겠다”고 말했다. 끝내 감정에 북받쳐 눈물까지 보인 이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지 12시간 31분이 지난 이날 오후 7시 32분에야 단상에서 내려왔다. 이는 같은 당 정청래 의원의 필리버스터 최장기록(11시간 39분)을 깬 것이다. 이로써 필리버스터는 지난달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한 지 192시간 25분 만에 공식 종료됐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테러방지법을 먼저 통과시키고 북한인권법과 선거구 획정안이 담긴 공직선거법 등을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이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가 예상외로 장시간 이어지자 줄줄이 지연됐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하루 종일 국회 부근에서 대기하며 이 원내대표의 발언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수시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처리가 불발되지 않도록 집권여당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날 이 원내대표의 ‘신기록’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장기간의 필리버스터로 테러방지법 반대의 절박함을 보였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원내대표라는 자리에 걸맞지 않게 국회 상황은 뒷전에 둔 채 기록 경신에만 매달렸다는 혹평도 만만치 않다. 전날 필리버스터 지속여부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 결국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중단을 강하게 요구하자 이를 받아들인 이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 중단을 최대한 유예하며 비대위의 결정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필리버스터는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장치인데, 이미 여당과 법안 통과를 합의해 놓고 최장기 필리버스터를 한 것은 ‘발목 야당’의 이미지만 덧씌우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평이다.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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