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ㆍ유통 모든 과정 분업화
단계별 웃돈 붙여 거액 챙겨
의사 등 23명 입건… 수사 확대
난치병 치료에 쓰이는 ‘제대혈 줄기세포’를 불법 제조ㆍ유통한 업체 관계자와 환자에게 불법 이식한 의사 등이 경찰 수사 1년 7개월여 만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줄기세포를 불법 이식한 혐의(제대혈 관리 및 및 연구에 관한 법 위반 등)로 A대학병원 의사 장모(68)씨 등 병ㆍ의원 의사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줄기세포를 제조한 H제대혈은행 전 대표 한모(59)씨와 이를 병원에 유통한 업체 관계자 8명도 함께 입건됐다.
제대혈은 산모의 태반과 탯줄 속에 흐르는 혈액으로, 이 속에는 연골, 신경 등을 생성하는 줄기세포가 들어 있어 난치병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작용을 우려해 보건복지부는 2011년 7월부터 지정 의료기관에만 이식 치료를 허가하고 있다. 이번 수사 대상인 H제대혈은행의 경우 복지부 운영 허가를 받지 못했는데도 제대혈을 유출시켰다 2014년 7월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본보 2015년 7월 20일자).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제대혈 제작, 유통, 이식 등 전 과정을 철저히 분업화해 범행을 저질렀다. 한씨는 2003년부터 제대혈 은행을 운영하면서 산모들에게서 기증ㆍ위탁 받은 제대혈로 줄기세포를 만들어 유닛(줄기세포 단위)당 100만~200만원을 받고 유통업체 11곳에 판매했다. 이씨 등 유통업자들은 이렇게 사들인 줄기세포에 300만~400만원 웃돈을 얹어 병ㆍ의원으로 팔아 넘겼고, 이를 구매한 김모(51)씨 등 의사들은 다시 회당 2,000만~3,000만원을 받고 환자들에게 줄기세포를 불법 이식했다.
한씨가 2014년까지 줄기세포 1만5,000유닛을 제조해 보관하면서 빼돌린 분량은 4,648유닛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한씨는 약 46억원을, 유통업자와 의사들은 판매 및 이식비용으로 약 300억원을 챙겼다.
조사 결과 제대혈 이식은 대부분 당뇨나 척추손상 등 대체 의료수단이 없는 난치병 환자들을 상대로 시행됐으며, 일부 부유층 고객은 노화방지 목적으로 줄기세포를 이식 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줄기세포 이식은 정부가 지정한 제대혈은행ㆍ의료기관을 통하지 않을 경우 임상 실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 치료 효과를 입증하기 어렵고 이식에 따른 위험성도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제대혈법 시행 이전인 2007년 줄기세포를 이식 받은 간경변 환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이 같은 의료사고를 막기 위해 전국 46개 의료기관에만 이식을 허가하는 등 줄기세포 이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비슷한 수법으로 불법을 저지른 무허가 제대혈은행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업체와 병원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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