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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2

입력
2016.03.0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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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5일 시인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1990년 노태우 정권은 3당 합당을 강행하며 민주화·통일운동을 탄압한다. 여기에 분신과 같은 극단적인 저항이 일어났다. 그때 김지하 시인이 위 칼럼에서 생명 중시를 제창하며 운동 진영을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당신들 운동은 이제 끝이다.”고 비난했다. 그는 죽음을 미화하는 움직임에 경고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글은 그의 지명도에 편승해 정권의 탄압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후 시인은 그 일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야 한다고 부르짖을 때가 아닌가. 한반도 모든 거주민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때가 지금보다 심각한 때가 얼마나 있었던가.

지금 한반도는 김지하 시인이 25년 전에 부르짖었던 때보다 더 위험한 시국에 빠져들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민족 생존권’ 운운하며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정당화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체제통일 의사를 숨기지 않으면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대북 제재를 강조하고 있다. 이 달에 예정된 한미합동군사연습은 그 규모와 내용에 있어서 김정은 정권을 최고조로 위협할 것이다. 거기에 인권문제를 명분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움직임이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리는 제네바를 비롯해 서울과 뉴욕 등지에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갈등을 교묘히 이용해 제재를 약화시키려 할 것이지만, 유엔 안보리가 추가 제재를 추진하는 마당에 그 압박은 높아질 것이다. 그런 가운데 휴전선이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의도된 도발이나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테러방지법 제정 논란에서 보듯이 안보문제를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의혹도 번지고 있다. 한반도 전역에서 죽음의 굿판이 벌어지는 꼴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형국이 매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지식인 사회와 언론 등에서 이런 집단적인 생명 위험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만성적인 분쟁지역이 중동과 한반도다.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들의 역내 안정화 전략으로 전쟁 재발 가능성은 낮지만 패권국들의 통제 가능한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1960년대 일련의 무장공비 침투사건, 1970년대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1990년대 초 북핵위기, 2000년대 일련의 NLL 일대에서의 충돌, 2010년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전,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잇단 휴전선 일대에서의 총격전 등등. 여기서 2010년대 들어 군사적 충돌이 그 이전에 비해 많아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2010년대 들어 늘어난 남북 간 충돌에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을까? 일단 북한정권의 교체기라는 시점과 북한의 핵능력 강화가 대남 도발을 촉진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대북정책이 관여에서 압박으로 전환한 때가 이 시기라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이 두 요소가 상승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미국이 패권을 유지할 능력이 한계에 처한 상태에서 패권을 지속할 의사를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점이 유의할 대목이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이 한국에 군사력 강화, 일본과의 정략적 화해를 압박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중 균형외교로 미국의 불만을 산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압박을 제어하기는 어렵다. 거기에 북한을 더 압박하겠다는 의욕이 얹어진다면 이 죽음의 굿판은 더 커질 것이다.

세계는 한반도를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다.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작년이 평화가 가장 위협받은 해로 기록됐다. 인권과 인도주의 등 다른 모든 보편가치는 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운 후에 추구할 수 있다. 최우선 과제는 통일이 아니라 위기관리다. 제재 일변도의 접근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이다. 남북관계를 제재의 희생양이 아니라 평화의 완충재로 활용할 때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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