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이 동화책을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는다. 누구에게 읽어주는 걸까. 옆에는 엄마도 동생도 아닌 유기견들이 있다. 귀를 쫑긋한 채 열심히 듣는 개도 있는가 하면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개들도 있다.
개에게 책을 읽어준다고? 다소 황당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미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는 봉사활동이다.
아이들 독서실력 키워주고 개들은 사람과의 소통에 도움
동물전문매체 도도와 바크포스트 등에 따르면 미국 미주리주의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보호소 친구들 독서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유기견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기획했다. 이는 아이들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치고 약한 동물에게 동정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나 두려움이 많은 개들도 사람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6~15세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참가자를 모집한 다음 개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할 때 보이는 증상들을 미리 알려준다. 개에 대한 지식과 책 읽기 훈련을 받은 어린이들은 유기견들 앞에 앉아 책을 읽어준다.
휴메인 소사이어티 관계자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개들이 책을 읽어주는 아이들 앞에 접근하거나 관심을 보이면 아이들은 개들에게 간식을 주면서 칭찬하는 방식”이라며 “이런 훈련이 반복되면 개들은 입양을 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가까이 올 수 있고 입양 확률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책 읽기 프로그램은 소심하거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개뿐 아니라 에너지가 넘치는 개들에게도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분하는 개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또 유기견에게 책을 읽어줌으로써 버려진 동물의 입장이 어떨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며,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긍정적 효과를 미칠 수 있다.
해외에는 이외에도 아이들이 개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들이 다양하다. 보호소 개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감이 결여 되어 있는 아이들을 위해 ‘듣는 개’로 훈련 받은 치료 도우미견들에게 책을 읽게 하기도 한다. 듣는 이가 책을 읽는 아이들의 발음이나 속도 등을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기 때문에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영국 노샘프턴셔 메이필드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개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한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감정이나 행동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개에게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책 읽기 능력이 향상된 것은 물론 감정을 조절하는 효과도 있었다.
국내 아직은 걸음마단계… 아이들 정서 안정되고 개들도 좋아해
국내에는 동물보호단체 애니멀아리랑이 지난 해 여름부터 보호소 개와 고양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자원봉사자와 어린이가 짝을 이뤄 애니멀아리랑이 운영하는 보호소의 개들인 에이스, 도트 등에게 보호소 안이나 공원에 가서 책을 읽어주도록 하고 있다. 애니멀아리랑은 또 책읽기의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국제리더십스피치협회와 함께 책읽기봉사단을 모집해 책읽기 강좌를 열고, 이를 수료한 사람들이 유기견 책읽기 봉사활동에 참여할 기회도 주고 있다.
현재까지 고등학교 유기견 봉사 동아리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보호소를 방문해 보호소 개들에게 책을 읽어줬다. 강태훈 애니멀아리랑 팀장은 “실제로는 아이들이 책을 읽어준다고 해서 개들이 얌전하게 듣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과 개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확실하다”며 “특히 사람에게 다가오기를 거부하는 개들도 책을 읽어주면 궁금해서 다가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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