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3월 2일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1848년 2월 나왔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그 ‘유령’이 전 유럽, 전 세계의 거리를 활보한 건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30년대 이른바 전간기였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정당 ‘코민테른’이 결성된 건 1919년 3월 2일이었다.
제1공산주의인터내셔널은 1864년 창립됐다. 1836년의 비밀결사 ‘의인동맹(Bund der Gerechten)’, 47년의 ‘공산주의자동맹’을 잇는 국제적 노동자 조직이었다. 자본에게 국적은 무의미하므로 노동자에게도 조국은 없다는 것, 만국의 노동자는 민족주의ㆍ애국주의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강령이었다.(‘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슬로건이 처음 나온 건 공산주의자동맹 창립 때였다.) 제1인터내셔널은 1872년 붕괴했다. 아나키즘(바쿠닌 등)과의 갈등, 민족주의자들과의 정서적 불화가 원인이었다. 제2인터내셔널은 1889년 출범했다. 독일 사민당, 프랑스 사회당 등 거의 모든 유럽 사회주의 운동집단이 느슨히 결합했다. 민족ㆍ민주주의, 연대노동쟁의 등을 둘러싼 노선 갈등이 첨예할 수 밖에 없었다. 1914년 제1차대전이 발발했고, 독일 프랑스 영국의 노동계급 지도자들이 잇달아 전시공채 발행에 찬성했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민족주의ㆍ애국주의의 광풍에 갈갈이 찢겼다.
그 깃발을 기워 다시 든 게 19년 오늘의 ‘코민테른’이었다. 레닌, 트로츠키 등 크렘린 궁에 모인 30개국 좌익 정당 대표 51명은 18년 독일 11월 혁명(해군 수뇌부의 독단적 전투계획에 맞선 킬 Kiel 군항 수병들의 반란으로 노동자ㆍ병사 평의회가 구성돼 베를린을 함락하고 독일 제정을 붕괴시켰다)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세계 혁명을 확신한 그들에게 시급한 건 혁명을 이끌 세계정당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노동 계급의 혁명 경험을 일반화하여, 기회주의와 사회애국주의로 뒤범벅된 운동을 쇄신하고, 세계 노동계급의 참으로 혁명적인 모든 정당들의 힘을 동원함으로써 전세계적인 공산주의 혁명의 승리를 촉진하는 것이다.”(창립 선언 일부, 던컨 핼러스의 ‘코민테른 역사’ 오현수 옮김, 책갈피)
이견이야 있지만, 레닌 사후, 즉 스탈린 이후의 코민테른 역사는 대체로 서글펐다. 2차대전 발발과 히틀러의 소련 침공 뒤인 43년 6월 8일, 코민테른은 집행위원회에 의해 공식 해산됐다. 진짜 ‘유령’들이 자취를 감춘 건 1989년 소비에트 붕괴가 아니라 그 무렵부터라 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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