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자 이민복(59)씨는 보통 대북전단 살포의 1인자나 풍선의 달인으로 통한다. 그가 2005년부터 대형풍선 8,000여 개에 매달아 북으로 날려보낸 전단지는 4억 장에 이른다고 한다. 2014년 10월 띄운 풍선에 북한군이 고사총을 발사해 우리군이 대응사격에 나서는 긴박한 상황도 벌어졌다. 그런 그가 지난 1월17일 경기 포천 산골짜기 집 앞을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대남 전단 한 장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최근 북한군이 남측 대북심리전 방송 재개에 맞서 대량으로 살포하고 있는 대남전단이었다.
▦ 휴전선 상공을 넘어 전단을 남북 양쪽으로 나르는 것은 바람이다. 그래서 남북 간 전단 대결은 바람의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동절기에는 북서풍이 주로 불어 북측이 단연 유리하다. 하지만 봄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남서, 남동풍 등 주로 남풍 계열의 바람이 불어 탈북자 단체들이 바빠진다. 이씨 같은 꾼들은 공군 기상대 등에서 제공하는 1~3㎞ 상공의 풍향 예보를 기다렸다가 5분대기조처럼 출동한다. 일부 단체들은 풍향과 관계 없이 과시용 또는 기록용으로 풍선을 띄워 남쪽 지역에 떨어지는 일도 흔하다.
▦ 올 봄부터는 우리 군도 대북 전단 살포에 나서기로 했다. 2004년 6월 남북 군사회담 합의로 중단했다가 12년 만에 재개하는 것이다. 북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발사 강행에 맞서 대북 압박 심리전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국방부 직할 대북심리전단의 훈련된 부대가 장비를 갖춰 수행하는 작전이라 민간의 대북전단 살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위성위치확인장치(GPS)와 타이머를 부착해 보다 효과적으로 전단을 살포할 수 있다고 한다. 드론(무인비행체)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 나아가 군은 포탄에 전단을 넣어 30㎞ 이상 보낼 수 있는 전단탄을 개발해 곧 실전에 배치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리 되면 남북 전단 대결은 바람의 전쟁 수준을 넘어선다. 자연의 바람에 전단을 날려보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낭만적인 데가 있다. 하지만 드론이나 전단탄을 이용한 대규모 전단 살포는 다르다. 접경지역의 긴장이 급격하게 고조되고 어떤 충돌로 비화할지 예측불가다. 특히 드론 같은 기기가 경계를 쉽게 넘나드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대형산불로 번지는 불장난이 되지는 않을지 오는 봄이 두렵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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