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나의 틀만 가지고 있는데/ 내 열망과 상처는 수천 만 갈래여서/ 이제 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군요" 송경동 시인의 시 ‘교조’의 한 구절이다. 읽다가 숨이 턱 막혔다. 시 속의 ‘당신’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까닭. 상대의 속내를 알고 싶어 뭔가 집요하게 캐묻고 닦달하는 정황이 퍼뜩 떠올랐던 거다. 송 시인의 삶을 고려해 볼 때 시에서 화자는 무고한 피의자의 입장에 놓여있다. 죄가 없으나 죄인으로 갇혀있는 심정. 백 마디 천 마디로 자신을 호소하고 싶으나 상대의 귀가 ‘하나의 틀’ 속에 갇혀 외려 이편의 침묵만 공고하게 만드는 상황.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든 입을 열기 힘들다. 폭력이나 협박으로 강요된 진심이 진심일 리 없다. 시의 첫 구절은 이렇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 내가 느낀 그 어떤 것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이 진술은 진심으로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으나 결국엔 상대의 이해를 얻을 수 없으니 아예 입을 닫겠다는 결연한 체념으로 가득하다. 체념이 결연하다니. 그렇게 더 안으로 삭이게 될 진심은 또 얼마나 많은 ‘열망과 상처’를 마음 안에서 곪아 터지게 할까. 문득 내 마음 안의 수천 만 갈래 열망들을 들여다본다. 그걸 보게 만들기 위해 ‘당신’에게 외려 ‘하나의 틀’만 강요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본다. 당신이 누구든, 당신만의 수천 만 갈래 상처를 미리 못 보살펴 많이 미안했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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