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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2016-수저론①] 벤처육성, 흙수저를 도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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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2016-수저론①] 벤처육성, 흙수저를 도금하라

입력
2016.03.0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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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을 운영하던 A씨는 최근 대기업의 횡포에 망연자실했다. 대기업 측에서 사업을 제안해 온 뒤 자체 개발한 기술을 그대로 베낀 유사 제품을 출시해 버린 것이다. A씨는 해당 대기업을 찾아가 항의했지만 자체 개발작이라며 오히려 기업의 이미지를 폄하했다고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당했다. 자수성가형 대표이사를 꿈꿨던 A씨는 결국 저작권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사업을 접었다. 해당 기업 총수의 아들이 새롭게 회장으로 취임한다는 뉴스에 A씨의 절망감은 깊어졌다.

유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된 '수저(계급)론'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대변하는 신조어로 자리잡았다. 흔히 재벌 자제를 두고 '금수저 물고 태어났다'는 말에서 유래된 수저론은 부모의 재산 및 지위에 따라 자녀의 경제력이 결정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국내 경제는 한층 더 위축됐고 취업난이 가속화 되기에 이른다. 당장 취업을 하더라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는 커져가고, 꿈을 잃은 젊은이들은 공무원이라는 바늘 구멍으로 몰려들고 있다.

▲ 픽사베이 제공

위의 사례처럼 최근 일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문제도 수저론을 대변하는 현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금수저가 흙수저의 신분 상승 기회를 빼앗고 부의 대물림을 심화시키는 모습이다.

■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 이제는 없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사례를 일컫는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속담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한 '자수성가'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치부되고 있다. 수저론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러한 측면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자신의 세대에서 노력하면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22.8%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 가까이 자수성가에 대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과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명문대를 졸업하면 취업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토익, 토플로 대변되는 외국어 능력까지 겸비하면 취업의 문턱을 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10년여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취업률은 점점 더 낮아지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대학 졸업장은 무의미한 기록에 불과했고 인문계의 직업 다양성은 좁아졌다. 지난해 기준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 실업률은 9%를 돌파하며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 픽사베이 제공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이 확대되면서 청년 고용에 대한 문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1,700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2016 인턴 채용 계획'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3.4%만이 채용 계획을 밝혀 그 심각성을 드러냈다. 기업별로는 대기업이 40.3%로 가장 높았고 중견기업은 22.0%, 중소기업은 20.6%로 나타났다.

창업을 통한 자영업도 특정 유망 직종에 몰리면서 폐업률이 높아지고 있다. '먹는 게 남는 것'이라며 꾸준히 인기를 끌었던 음식점도 국세청 조사결과 25%로 가장 높은 폐업률을 기록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스타트업도 살아남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일은 복권 당첨 확률보다 어렵게 되어 버렸다.

■ 첨단산업 육성하고 재벌 위주 정책 개선해야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 기준 세계 부호 상위 400명을 부의 원천에 따라 분류한 결과 65%인 259명은 자수성가형으로 조사됐다.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아만시오 오르테가(인디텍스), 워렌 버핏(버크셔 헤서웨이), 제프 베조스(아마존) 등 상위 10명은 모두 자수성가형 부호였다. 미국의 경우 세계 랭킹 400위 안에 포함된 125명 가운데 자수성가한 사람이 89명으로 71%를 차지해 세계 평균보다 높았다.

아시아 부호 80명 중에서도 63명(70%)이 자수성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의 경우 29명 중 28명이 창업가로 알려져 자수성가 비율이 높았다. 일본의 경우 야다이 다나시(유니클로), 손 마사요시(소프트뱅크), 이토 마사토시(세븐일레븐) 등 400위 안에든 5명의 부호가 모두 창업가였다.

한국은 국내 상장사 주식부호 조사 결과, 창업자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경영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1일 기준 상장사 주식부호 상위 10명 가운데 자수성가형 사업가는 한미약품의 임성기 회장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재벌 3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 볼 때 한국에서는 자수성가를 이뤄내기 어려운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적 한계와 재벌 위주의 산업 정책이 흙수저의 신분 상승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10년 주기로 세계 최고 기업이 나오는 것은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과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이 전통·첨단 사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라며 "국내 자본 시장도 역동적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픽사베이 제공

이를 위해 첨단 산업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자생적 환경을 만들고, 대기업과 동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뼈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 스타트업의 활성화를 위해 창업에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도 대안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경우 정부의 규제로 인한 신규 사업 창출의 제한을 문제로 꼽았다. 기업이 성장하는 만큼 규제도 늘어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사라진다는 것.

대기업들의 시장 잠식 구조도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독과점을 통해 성장한 대기업들이 골목 상권까지 잠식하는 데다 부를 지키는 경영을 펼치다보니 산업이 기존 틀을 깨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족벌 경영과 각종 규제로 인해 국내 시장은 새로운 기업이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 육성 정책을 활발히 펼치는 한편 승자 독식 구조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채성오기자 cs86@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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