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어느 날 미국 미시간주 인구 10만의 소도시 플린트에서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수돗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하루는 푸른 빛, 다른 날은 엷은 녹색의 수돗물이 배수구로 빠져나갔다. 코를 찌르는 썩은 휘발유 냄새가 진동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놀랐고, 다른 이는 아이의 얼굴에 퍼지는 붉은 반점에 소리쳤다. 문외한의 눈에도 납 오염이 의심되는 상태였다. 도저히 21세기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플린트의 환경재앙은 그러나 그 뒤로 19개월이 지나고서야 전모가 드러났다. 재정 절감을 위해 바꾼 상수원으로부터 납 성분에 오염된 수돗물이 공급되고 있다는 정황을 미시간 주정부가 알고서도 “위험하지 않다”고 무시해온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납 중독 환자를 양산하고 이로 인한 박테리아 감염 사망자가 9명이나 발생한 플린트 사태는 이른바 ‘환경인종주의(Environmental Racism)’가 빚어낸 대표적인 비극이다. 전체 인구 중 흑인 비율이 60%에 달하고 수입(가구당 1년 2만5,000달러)은 미시간 주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도시 플린트. 이곳에 덮친 재앙의 근원에는 흑인에 대한 암묵적인 무시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만일 같은 일이 워싱턴DC에서 벌어졌다면 결과는 달랐을 게 분명하다. 플린트 시장마저 “이곳의 재앙은 환경인종주의에서 비롯됐다”고 인정할 정도다. 플린트 주민들은 플린트 시를 이제‘부싯돌(Flint stone) 도시’라고 부른다. 자동차 산업의 맹아를 틔운 곳이지만 정작 부싯돌 불꽃처럼 잊혀진 도시라는 의미에서다.
플린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외계층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환경 피해를 방치하는 사례는 미국 곳곳에서 목격된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남쪽 윌밍턴은 컨테이너 항구도시로 블루칼라 직종 히스패닉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다. 최근 수년 사이 이곳에는 원유를 땅에서 퍼 올리기 위한 각종 장비 수백여 개가 마치 나무들처럼 주택가에 빼곡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역 언론들은 “원유 굴착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지붕들 위에 빠짐없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다. 독버섯처럼 자리잡은 이들 장비는 매연과 각종 유해가스를 뿜어내면서 주민들의 건강을 손상시키고 있다. 코피를 쏟거나 만성두통, 천식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주정부 산하기관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공기오염에 따른 발암 가능성도 이웃 도시보다 2배 가량 높다. 하지만 시 당국은 묵묵부답이다. 환경개선을 위해 당장 굴착기들의 이전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아무도 히스패닉 노동자들의 요구를 경청하지 않는다. 시사잡지 ‘더 아틀란틱’은 “공기 질 조사 결과 심각한 유해성분이 검출됐지만 어느 기관도 장비 이전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 주민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 윌밍턴으로부터 멀지 않은 포터랜치 주민들도 비슷한 환경재난을 겪었다. 3개월 이상 천연가스저장시설에서 메탄가스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주 정부는 윌밍턴과 달리 비교적 부촌으로 분류되는 포터랜치에 재빨리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주비용을 지불하도록 관련 업체를 부추겼다. 현재 윌밍턴 주민들은 “포터랜치와 비교해 공정한 절차를 밟아줄 것”을 소송과 서명운동을 통해 주장하는 중이다.
1980년대 노스캐롤라이나 주 워런카운티의 흑인 노동자 집단 납중독 사고, 유색인종 집중 거주지일수록 위험시설과 가깝다는 연구결과 등이 끊임없이 환경인종주의의 경고음을 울렸지만 플린트와 윌밍턴의 슬픈 이야기는 오늘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인종들이 뒤섞인 용광로 같은 사회,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이지만 백인이 주류를 내놓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인종과 계층에 대한 불평등이 극심한 곳 또한 미국이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경선 주자들은 이제 이들 환경불평등의 피해계층과 소수 인종의 표심에 매달려있다. 선거에 닥쳐야 불평등의 존재를 알아채는 정치인들의 신기한 개안(開眼)은 유독 미국만의 경우는 아니지만 말이다.
양홍주 국제부 차장대우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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