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희 여의도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극심한 통증으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환자가 고통과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온다. 가정의학과 특성상 이런 환자는 처음부터 가정의학과로 오지 않는다. “더 이상 갈 수 있는 과가 없어서 한번 와 봤어요” 라는 환자의 말에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 통증은 이 분야 전문인 마취통증의학과를 비롯한 여러 과가 협진체계로 치료하고 있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치료법이 시행되고 있고 치료성적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적지않다. 통증은 통증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에게도 참으로 어려운 질환이다.
통증은 원래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려주는 경고반응으로, 위험을 방지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꼭 필요한 증상이다. 예를 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가락에 화상을 입었는데 통증을 못 느낀다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이 악화되고 발을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화상을 치료하면 당연히 통증도 좋아져야 한다. 그러나 상처가 치유되었는데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손상을 입어서 느끼는 통증을 급성 통증이라 하며, 치유 후에도 3개월 이상 계속되는 통증은 만성 통증이라고 한다. 급성 통증과 만성 통증은 같은 통증이지만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다. 급성 통증은 원인을 쉽게 알 수 있고 원인질환이 치유되면 사라지지만, 만성 통증은 원인이 없어도 나타날 수 있으며 통증 그 자체를 병으로 인식해야 한다. 류마티스성 또는 퇴행성 관절질환, 근골격계 이상, 신경병증 통증, 완치가 불가능한 질환에 의한 통증 등 원인을 알아도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해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도 만성통증에 포함된다.
만성통증의 특징으로는 남들은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않는 작은 자극에서도 통증을 느끼는 이질통, 통증을 일으킬 만한 자극이 없는데도 자연적으로 통증이 발생하는 자발통, 아픔을 느낄 만한 자극이기는 하지만 남보다 심하게 더 통증을 느끼는 통각과민이 있다. 만성통증의 가장 극심한 양상이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이다. 현재 국내에 약 2만여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출산의 고통보다 더 심한 고통으로 보고되고 있다. 아직까지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의 정확한 원인과 발병기전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골절, 염좌, 타박 같은 외상이나 수술 후 또는 뇌혈관장애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환자의 경우 직접적인 신경 손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진단을 내리기도 어렵다. 분명한 건 예전에는 의사들조차 잘 알지 못했던 이런 만성 통증들이 최근에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만성 통증은 원인이 뚜렷한 급성 통증에서 시작된다. 원인질환이 잘 치료가 되었음에도 통증은 지속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는 통증이 급성질환 치유와 함께 좋아지고 누구는 만성으로, 심지어 복합부위통증 증후군과 같은 극심한 통증으로 진행되는 것일까? 정확한 해답은 없지만 여러 연구 결과들을 보면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이 급성 통증을 만성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평소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급성 통증이 발생하면 통증 자극에 대한 뇌의 반응이 훨씬 민감하게 나타나고 통증 전달 과정과 통증에 반응하는 뇌의 시스템이 변형되어 통증이 만성화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실제로 만성 통증에 진통소염제만 복용하는 경우 별다른 치료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지만 항우울제와 같은 정신과 약물을 같이 처방하면 통증이 뚜렷이 감소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 의학으로 완전 치유가 힘든 만성 통증을 예방하려면 평소 긍정적인 정신건강과 바른 자세, 균형 잡힌 영양섭취가 필요하다. 또한 통증이 발생한 경우 가볍게 여기지 말고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도 만성 통증으로 가는 위험성을 감소시켜줄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통증이던지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속히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족 사이에 따뜻한 공감과 소통, 서로에 대한 정서적 지지가 만성 통증을 예방하고 통증을 감소시키는데 의학적 치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 저녁 가족에게 던진 따뜻한 눈길과 격려의 한마디가 가족의 만성통증을 예방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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