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봄이 왔다. 지난 주말 고향 뒷산 칠갑산에 갔었다. 칠갑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칠갑산에서 자라는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을 받아 팔고 있었다. 도시에서 맛보기 힘든 봄의 기운을 칠갑산 숲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곧 산에는 노란 생강나무 꽃이 필 것이다. 이어서 산에는 진달래꽃과 벚꽃으로꽃 잔치를 펼칠 것이다. 신록이 짙어지는 무더운 여름이 되면 도시는 사막의 열기가 가득해 진다. 과로와 더위에 지친 도시민에게 숲은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가 된다. 뜨거운 열기가 식는 가을이 오면 우리의 산하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단장을 하여 팍팍한 마음에 한 가닥 풍류가 찾아온다. 눈이 와 산에 눈이 쌓이면 숲으로 난 길을 걸으며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갖을 수 있다. 숲 속으로 난 길을 걸으며 가끔 마주치는 다람쥐와 도루와의 만남은 사람이 아닌 다른 자연의 친구가 우리와 함께 하면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숲에서 나는 산나물, 버섯, 열매 등 맛있는 자연산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산행의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이와 같이 숲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숲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학자들은 숲의 생태계서비스라고 부른다. 식료품과 목재를 만들어주는 물질공급서비스, 아름다운 꽃이 피는 다양한 식물과 야생동물을 비롯한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생명유지·지원서비스, 빗물을 저장하고 기온을 조절해주는 환경조절서비스, 그리고 사람들에게 휴양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문화서비스는 산림이 제공하는 대표적인 생태계서비스이다. 산림이 선물하는 생태계서비스의 혜택을 더 많이 받기위해서는 산림의 생산력을 유지시키면서 동시에 산림을 보전하는 지속가능한 산림관리가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산림관리를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현대 우리가 사회 속에서 봉착한 문제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인 점은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주도의 명령통제방식은 더 이상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산림이나 하천과 같이 기계를 사용하여 해결할 수 없는 생태계서비스와 같은 공공재화의 공급 문제에서는 정부혼자 하려할 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와 시민, 지역공동체의 협력적 노력을 배제하고는 공공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정부-시민-지역공동체의 협력적 노력으로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거버넌스(governance) 혹은 협치라고 부른다.
정부-시민-지역공동체의 협치는 특히 산림분야에서 지속가능한 산림관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효율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래전부터 전통적인 방법으로 지역 주민들이 자치적인 규약을 만들어 마을 공동의 산림을 관리해오던 송계와 같이 지역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산림을 관리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한편 산촌 주민들은 오랜 기간 산림에 기대어 살아오면서 산림의 이용과 관리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외부의 전문가에 의존한 정부 혼자의 산림관리보다 산촌 주민과 함께 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전통지식을 살려 산림을 관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산림 인근에 거주하는 산촌 지역 주민들은 외부에서 초빙하는 전문가에 비하여 산림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나므로, 정부기관에 의한 산림관리 및 보호에 비하여 더 비용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유림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목적으로 정부-시민-지역공동체의 협치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국유림 대부사업, 공동산림사업, 국민의 숲, 그리고 국유림 보호협약 제도는 국유림 관리를 위한 협치(governance)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중에서도 국유림 보호협약에 의한 국유임산물 무상양여 제도는 국유림 보호와 지역주민 소득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국유림 보호협약은 국유림의 산림자원 보호?육성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하여 정부기관과 지역주민의 상호 협력 하에 효율적으로 보호?관리함을 목적으로 한다. 보호협약을 체결한 산촌 주민들이 해당 국유림의 보호활동을 수행하게 되며, 보호활동의 대가로 국유림에서 생산되는 임산물의 일부를 무상으로 양여 받을 수 있다. 2014년 기준으로 전국 841개 마을에서 국유림 보호협약에 의한 국유임산물 무상양여 제도에 참여하고 있으며, 주민들에게 돌아간 추가 소득이 약 60억원이었고, 정부도 양여료 명목으로 6억 7천만 원의 추가적인 세입을 올렸다.
국유림 보호협약에 의한 국유임산물 무상양여 제도와 같은 산림관리 거버넌스는 산림관리를 지역주민들이 담당하게 되어 행정비용이 감소하고 산림관리 예산이 절감되는 장점이 있다. 산림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측면에서도 국유림 보호협약에 의한 국유임산물 무상양여 제도는 기여할 수 있다. 자연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전 국토의 63.9%에 해당하는 산림자원을 이용하지 않은 채 방치해둔다는 것은 심각한 자원 낭비라 할 수 있다. 국유림 보호협약에 의한 국유임산물 무상양여 제도는 국유림 내 존재하는 잠재적 자원을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국유림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며, 산촌 주민들의 소득이 향상되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양여료 납부를 통하여 국가 재정이 확충된다는 점도 이 제도의 장점 중 하나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산촌 주민들이 산림공유자원의 물질생산 혜택을 받게 되면서, 지역 간 불평등이 완화되고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지역주민들이 정책집행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정부가 제공함으로써 정부 정책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정부와 주민이 정책목표를 함께 공유함으로써 정부신뢰를 형성하고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국유림 보호협약 제도의 수혜집단은 비단 산촌 주민들만이 아니다. 산촌 주민들이 창출한 생태계서비스로 도시민들은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공기, 신선한 임산물을 제공받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산촌 주민들은 생태계서비스의 생산자(물론 소비자일 때도 있다)이고 도시민들은 생태계서비스의 소비자이다. 산림을 가꾸는 대가로 받는 국유임산물의 혜택은 산촌 주민들에게 돌아가지만, 생태계서비스의 혜택은 국민 모두에게 제공된다. 이런 점에서 산촌 주민들이 산림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하고 보호하는 활동은 산림생태계서비스를 증진시켜 국민 전체의 생태복지 향상에 기여한다.
산림관리에 지역공동체와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산림관리제도를 더욱 활성화시키자. 아파트 뒷산이나 시유림, 공원 등 도시숲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하는 역할에 도시민과 지역공동체를 참여시키는 제도들을 다양하게 도입하고 시행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국유림을 산촌주민의 소득을 증대하고 국유림의 주인의식을 불러 넣을 수 있도록 국유림보호협약제도를 활용하여 모든 국유림 아래 마을주민들과 함께 국유림을 관리 경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시민-지역공동체의 협력적 산림관리제도는 시민들이 자연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는 감각적 경험을 안겨주어, 자연에 대한 정서적 친밀감을 높인다. 자연과의 연계성은 사람들이 자연과 공감하고 배려하게 도와주어,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정부-시민-지역공동체의 협력적 산림관리제도는 여타의 다른 시민행동에 참여를 촉매하는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개인의 이기심에 따른 행동을 자제하고 집단 구성원간 상호 배려와 헌신 등의 행동양식을 제공함으로써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는 자질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명령과 통제의 주체이던 시대는 지났다. 현대사회에서 정부는 공공의 문제 해결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장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더욱 다양한 정부-시민-지역공동체의 협치에 기반한 제도들을 더욱 다양하게 도입하고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정책결정자들이 실제 정책수립 및 집행과정에서 지역주민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쉽사리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주민참여적 산림관리 거버넌스의 정립이 필요하다. 작년부터 시도되고 있는 전라남도의 『숲속의 전남』 프로젝트는 신선한 산림거버넌스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의 축적으로 한국의 산림관리 거버넌스의 귀납적 이론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한 한국의 산림관리 거버넌스 제도의 실효성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윤여창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글로별환경경영학 전공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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