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여제 김자인 선수의 남편
구급대원 오영환씨 수필집 출간
“사고 현장에서 구해내지 못했던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픕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아 힘들었는데 그런 경험을 글로 쓰다 보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큰 도움이 되더군요. 독자들의 응원도 큰 위로가 됐습니다.”
서울 성북소방서에서 오토바이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는 오영환(28) 소방교는 지난해 말 책 ‘어느 소방관의 기도’(쌤앤파커스 발행)를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씨는 최근 한국일보 편집국을 찾아 “책을 냈다고 하니 동료 소방관들도 신기하게 본다”며 환하게 웃었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는 그가 현장에서 겪은 일을 글로 풀어낸 책이다. 구조 현장에서 끝내 목숨을 구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궈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이 주를 이루지만 책의 구심점에는 오씨가 처음 사람의 목숨을 구한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20대 초반이던 2008년 부산 해운대에서 의무소방대원으로 일하던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속에서 익사 직전의 어린 소녀를 구해냈다. 그는 “그때의 강렬한 느낌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책의 인세 70%는 순직ㆍ부상 소방관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다.
오씨가 소방관이 되겠다고 생각한 건 고교 시절 우연히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의 모습을 보면서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사고로 절망에 빠졌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딱히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던 때였는데 저런 일을 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소방관이 되기 위해 굳이 4년제 대학을 마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시험을 치렀다. 의무소방관 시절부터 7년간 소방관으로 살아오며 열악한 환경에 좌절하기도 하고 단순 두통ㆍ치통 환자의 구조 요청과 취객의 폭력에 한숨을 내쉴 때도 있지만 그는 “직업 선택은 정말 잘한 것 같다”고 거듭 말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는 것만큼의 보람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방방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자 대학에 진학해 최근 학사모를 쓰기도 했다.
오씨는 소방관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바꿔보고 싶다는 말도 했다. 소방관을 늘 희생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전문적인 기술로 인명을 구하는 ‘멋진’ 사람으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고로 순직하는 소방관보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관심 가져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저희를 불쌍하게 보는 시선은 불편해요.”
결혼 전 책을 한 권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이룬 그는 산악구조대 시절 암벽등반을 배우며 알게 된 ‘암벽여제’ 김자인 선수와 지난해 12월 결혼했다. ‘작가’로서 다음 꿈은 소방관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것이다. 오씨는 “소방관의 진정한 모습을 담는 것뿐 것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 안전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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