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화폐가치 떨어뜨리려 도입
유럽은 유로화 가치 20% 절하 효과
日은 엔화 가치 되레 올라 역효과
전문가들 “주요국 금리 더 내려
신흥국서 탈출한 돈 U턴시켜야”
마이너스 금리는 돈을 빌려주는 쪽과 빌리는 쪽 모두에게 당혹스런 개념입니다. 어떻게 돈을 빌리면서 이자를 오히려 받아 올까요. 돈을 빌려주는 쪽이 오히려 이자를 내야 한다고요? 그러나 이미 전세계 23개국에서 불경기 탈출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새로운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
마이너스 금리는 왜 도입했는가
불경기가 닥쳤을 때 경기를 살리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려면 먼저 사람들의 지갑이 두둑해져야겠죠. 사람들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드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각자가 돈을 많이 벌면 됩니다. 둘째, 돈을 많이 빌리면 됩니다. 셋째, 물건의 가격이 내려가면 상대적으로 지갑이 두둑해진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방법은 어렵습니다. 누군가 지출을 해야 다른 누군가가 돈을 벌 수 있는데 이미 아무도 지출을 하려고 하지 않는 불경기 상황이니까요. 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그나마 시도해 볼만합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는 건 그래서입니다. 금리를 낮추면 돈을 빌리기가 쉬워지니 돈을 빌려서 소비를 하라는 거지요. 또 금리를 낮추면 이자를 받으려고 들어온 외국자금이 그 나라의 낮아진 이자율에 실망하고 탈출을 시작합니다. A라는 나라에 들어왔던 외국자금이 그 나라를 떠날 때는 투자용으로 갖고 있던 A국 화폐를 팔고 달러로 바꿔서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A국 화폐를 내다파는 수요가 많아지고 달러를 사들이려는 수요는 늘어나서 A국 화폐의 가치는 하락합니다. 그 나라의 화폐가치가 낮아지면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의 가격이 싸게 느껴지죠. 그러면 외국인들은 그 나라 물건을 사들이게 됩니다. A국의 입장에서 보면 수출이 늘어나는 거겠죠. 이게 금리를 낮춰서 불경기를 탈출하는 공식입니다.
궁금한 건 금리를 제로로까지 낮췄는데도 경기가 잘 살아나지 않았는데 마이너스로까지 금리를 낮추면 되겠느냐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출 경우 경기를 살리는 두 번째 방법(돈을 많이 빌린다)은 작동하지 않지만 세 번째 방법(화폐가치를 떨어뜨려서 물건의 가격이 낮아보이게 만든다)에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금리가 0%인데도 돈을 빌려서 투자나 소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금리가 높아서가 아니라 투자나 소비를 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죠.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더라도 별 효과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자국의 화폐가치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 지금보다 10%가 더 떨어질 수도 있고 20%가 더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 나라 물건 값이 외국인들의 눈에는 10% 또는 20% 더 싸게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이건 구매욕구를 충분히 자극할만한 수준입니다. 실제로 유럽이 지난 2014년 6월에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을 때 유로화의 가치는 6개월만에 달러화 대비 20% 넘게 떨어졌습니다.
마이너스 금리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가장 큰 궁금증은 금리가 마이너스인데 누가 돈을 빌려줄 것이며 누가 이자를 내면서 예금을 하겠느냐는 겁니다. 오히려 모두들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금고나 장롱에 넣어놓는 금융 마비현상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일반인들에게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면 아무도 예금을 하지 않고 모두들 돈을 빌리러 은행창구로 달려올 겁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금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은행도 빌려줄 돈이 없습니다. "오늘부터 마이너스 금리다"라고 아무리 소리쳐봐야 실제 시중 금리는 제로에서 멈출 뿐 마이너스로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그럼 유럽이나 일본은 어떻게 금리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렸을까요. 마이너스 금리는 일반인들에게 적용하는 게 아니라 은행과 중앙은행 사이에서만 적용합니다. 불경기에는 예금은 많지만 대출할 곳은 적기 때문에 은행에 늘 돈이 남습니다. 은행은 남는 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는데 이때 중앙은행이 예치금에 대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겁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0.3%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고 일본중앙은행(BOJ)은 -0.1%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일반 소비자라면 예금에 대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순간 은행으로 달려가 예금잔액을 모두 현금이나 수표로 찾아서 집에 보관하겠지만 은행들은 남는 돈을 현금이나 수표로 찾을 수 없습니다. 중앙은행은 수표를 발행하지 않으며 은행들의 현금인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습니다. 유럽의 은행들은 남는 돈이 있으면 -0.3% 이자를 주는 중앙은행 계좌에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넣어둬야 합니다.
은행들이 그냥 앉아서 손해만 보고 있을 수는 없겠죠. 그때부터 은행들은 중앙은행에 이자를 내고 돈을 넣어두는 대신 시중에 돌아다니는 이자율 0%짜리 채권들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0%짜리가 다 떨어지면 -0.1%짜리를 사들이고 그게 다 떨어지면 -0.2%짜리 채권을 사들입니다. 이자율이 -0.29999% 짜리 채권도 고맙다면서 사들입니다. 적어도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것보다는 이자가 적게 들어가니까요.
이렇게 되면 신용도가 높은 나라나 기업은 단기자금이 필요하면 연 3%에 가까운 이자를 받아가면서 언제든지 돈을 빌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원리로 시중의 단기 이자율은 유럽중앙은행이 정해놓은 -0.3% 근방에서 결정됩니다. 이렇게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유로화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게 유럽중앙은행(ECB)이 노리는 결과죠.
마이너스 금리는 왜 때때로 작동하지 않는가
일본이 지난달 말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이유도 마찬가집니다.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춘다고 일본인들이 돈을 갑자기 빌려쓰지는 않겠지만 일본 엔화의 가치가 떨어져서 일본 기업들이 만든 제품이 외국에서 좀 더 많이 팔리지 않겠느냐는 기대였습니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예상대로 시중 금리는 마이너스로 돌아섰지만 엔화는 오히려 강세가 됐습니다. 유럽의 마이너스 금리는 유로화를 공식대로 약세로 이끌었는데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는 왜 엔화를 강세로 돌변하게 했을까요. 유럽은 세계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던 2014년에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지만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는 국제금융시장이 잔뜩 불안할 때 발표됐다는 차이 때문입니다.
미국이 2015년 12월에 기준금리를 올리고 2016년에는 2~3번 정도 금리를 더 올리겠다고 발표하면서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크게 올랐습니다. 미국이 경기를 살리려고 양적완화를 펼칠 때 풀렸던 달러가 중국 등 신흥국으로 몰려가 있다가 달러화의 가치가 본격적으로 올라가자 다시 미국으로 쏠리기 시작했죠. 신흥국에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신흥국들의 화폐 가치는 급격히 떨어지며 불안신호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춘 겁니다. 그러면 엔화가치는 하락할 것이고 그러면 달러가치는 상대적으로 더 오를 것이고 그러면 신흥국에서 달러자금이 또 대거 빠져나가면서 신흥국 돈 가치는 또 떨어지겠죠.
신흥국에는 아베노믹스로 인해 대거 풀려나간 엔화자금도 많이 나가있었기 때문에 신흥국 화폐가치가 더 하락하기 전에 일본으로 빠져 나오려는 움직임이 생겼습니다. 원래 일본에서 나온 돈이니 일본으로 돌아가려면 신흥국 자산을 팔고 나온 돈으로 엔화를 사들여야 합니다. 엔화의 가치가 급등하게 된 시발점입니다. 게다가 구로다 일본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20일만해도 마이너스 금리 계획이 없다고 했는데 9일 만에 말을 바꿨습니다. 뭔가 갑자기 마이너스 금리라도 도입해야 할 세계경제에 절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처럼 비춰지면서 신흥국으로 풀렸던 엔화 자금이 일본으로 급격히 탈출하기 시작하며 엔화가치를 더욱 끌어올렸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들이 금리를 마이너스 더 깊은 곳으로 내리는 게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을 치유하는 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야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돈들이 낮은 금리에 실망해서 다시 신흥국으로 되돌아가고 그래야 신흥국들도 자금 유출이나 환율 불안의 걱정 없이 금리를 내리고 경기를 살려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이진우 경제방송진행자(MBC라디오 ‘손에잡히는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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