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가 회장과 일부 집행부 주도로 테러방지법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해 논란을 불렀다. 변협 일부 이사가 이에 반발해 사퇴하고 일선 변호사들의 항의가 잇따르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변협의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실추되고 있으니 유감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법률안에 대한 변협의 이번 의견 제시는 특정 정당의 필요에 맞춰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이번 의견서는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하창우 변협 회장에게 요청해 제출됐다고 한다. 국회 차원이 아니라 특정 정당의 요구에 따라 정치적 공방이 거듭되는 법안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크다. 더구나 제출된 의견이 회원들의 뜻을 모으는 합당한 절차를 빠뜨린 채 이뤄졌다면 논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인권 옹호 등 설립 목적에 관련된 법안 제ㆍ개정 의견 발표는 이사회 의결 사항이라고 돼있는 변협 회칙에 비추어 회칙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새누리당의 요청을 받은 지 불과 하루 만에 제출한 의견서에 깊이 있는 내용이 담겼을 리 없다. 모두 7쪽으로 된 테러방지법안 의견서 내용이 수준 이하라는 게 많은 변호사들의 주장이다. 일부 핵심 내용은 국회 정보위원회의 법안 검토 보고서와 토씨까지 같다고 한다. 변협이 자체 의견서를 내면서 국회 상임위 보고서의 논리를 사실상 그대로 차용했다는 의혹이 따를 수밖에 없다.
변협이 의견서에서 테러방지법에 대해 ‘전부 찬성’의견을 낸 데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변협이 지난 2002년과 2003년 국가정보원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과 비교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당시 변협은 “정보기관에 권한을 집중시키는 것은 민주국가의 권한 배분 및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반한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물론 시대적 상황과 법안 내용에 따라 견해가 바뀔 수도 있지만 인권 보호에 가장 앞장서야 할 변호사 단체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은 그 존재 의미를 의심스럽게 한다. 설사 극히 부분적 인권 침해 가능성이라고 해도 함부로 눈감을 게 아니다.
테러방지법은 현재 여야 간에 인권 침해 가능성을 두고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사안이다. 영장 없이 금융정보나 각종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고, 국민의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등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조항 등이 논란을 빚고 있다. 변협은 2만 여명에 이르는 변호사가 모두 가입한 법정 단체로 존재감이 다른 법조 단체와 같을 수 없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처신해 마땅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