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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를 떠나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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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를 떠나 보내며

입력
2016.02.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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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석 이철승 큰 어르신 영전에 엎드려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부음을 접하면서 슬퍼하기보다 절망을 극복하고 일어서라던 선배님의 말씀을 저희 후학들은 되새기며 다짐합니다.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이셨던 선배님은 자신을 가리켜 ‘이(2)평(平)주의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크고 멀리는 평양에 가서 옥류관 냉면을 드시고, 작고 가깝게는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에 가서 후배 체육인들의 건투하는 모습을 보며 격려하고 싶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민족의 과업인 남북통일을 태극기 깃발 아래 이루고, 목전에 닥친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바라는 두 가지 소망이었습니다. 선배님의 필생의 과제이기도 했던 이 두 가지 소망을 대신 이뤄드려야 한다는 것이 바로 우리 후학들의 소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홀연히 우리들 곁을 떠나신 영전에 모여 아름다웠던 선배님과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거듭 다짐해 봅니다.

선배님은 대한민국 건국사의 마지막 산 증인이기도 했습니다. 평생에 말씀하시던 대로 당신은 “구시대의 막둥이요, 신시대의 맏형”이셨습니다. 선배님은 해방을 맞아 귀국하신 우남 이승만, 백범 김구 선생과 조국에서 일제 치하에 어렵게 지내신 고하 송진우, 인촌 김성수, 근촌 백관수 선생 등의 밥상을 나르고 군불을 태우면서 가르침을 받았던 옛일들을 자랑 삼아 들려주셨습니다. 해방 후 혼란했던 정국을 맞아 약관의 전국학생총연맹 위원장으로 미소공동위원회에 가던 스티코프 소련 장군에게 덕수궁 돌담에서 돌팔매질을 하며 반탁운동을 펼치고 박헌영의 남로당 적색분자들과 투쟁하고 6ㆍ25전란을 맞아 학도병을 조직해 백석간두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는 전열에 참가했던 무용담도 잊지 않고 전해주셨습니다. 그뿐입니까. 해공 신익희, 유석 조병옥, 운석 장면 선생을 따르며 야당 정치인으로 민주화 투쟁을 하신, 정치사의 중요한 대목을 몸소 겪고 목격하신 산 증인이셨습니다.

선배님은 유엔 대표로 참석하신 틈에 벌어진 5ㆍ16군사정변으로 한국 여권을 무효화 당해 무국적 신세로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고생함으로써 뒷날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던 7년 동안의 정치기반을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허송해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훗날 야당 당수로서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 초당 외교를 펼치며 미군 철수에 반대했던 선배님이야말로 국가안보와 이익 앞에서 바이파티산십(bypartisanshipㆍ초당적 자세)을 펼쳐 보인 큰 정치인이셨습니다. 당신은 이 때문에 경쟁 정치인들로부터 모진 비난과 중상모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묵묵히 자신의 정치신념을 지켜오셨습니다.

이처럼 백수풍진(白首風塵) 모진 인생을 견디며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유가(儒家)의 선비정신이 배인 가풍(家風) 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선생은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여 항일할 수 있었던 것을 두고 할머니의 고집과 참판을 지낸 외가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가정을 잊고 오로지 국사에 몰입하는 정신, 즉 ‘불고가사 과문불입(不顧家事 過門不入)’을 좌우명으로 삼으시며 깨끗한 정치 일생을 보내셨습니다.

특히 선생은 언론인 출신 고등학교 후배들을 많이 둘 수 있었던 것도 큰 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라성 같은 후배들이 언론계 버팀목으로 있어 탄탄한 역할을 해준다고 주변 정치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일을 고맙게 기억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후배 정치인과 박권상, 조세형 같은 언론계 후배들이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일을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추억과 전통을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시고 떠나신 선생을 야속하게 탓하고 아쉬워한들 어찌하겠습니까. 선배님의 권유로 정가에 몸을 담고 선생님의 마지막을 지켜 본 후학으로서 감사의 음덕과 추억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며 엎드려 재배삼배 거듭 명복을 빕니다.

박실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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