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에이프릴 카터는 그의 책 ‘직접행동’에서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은 민주주의 결여에 대한 반응”이라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아래서 정부가 정당성을 갖추고 정부에 대한 비판이 국회나 정부의 제도를 따라 잘 전달된다면 굳이 시민들이 거리로 나설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지난달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열흘간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받은 인상도 이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마이나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지난달 29일 방한 일정을 마무리 짓는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국민 간의 다른 대화 및 소통 채널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시위가 우선시 되는 옵션이 됐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 취임 3년을 맞는 거리는 소란스럽다. 대통령은 들으려 하지 않고 정치인들은 민의를 외면하고 언론이 왜곡을 하니, 세월호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섰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어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자들도 거리로 나왔고 밥쌀 수입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뒤따랐다. 정부와 국민들 간에 대화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갈등은 커져갔다. 급기야 이런 요구들이 모두 모여 11월 민중총궐기가 됐다.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이들까지 거리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도 대화와 소통 채널은 여전히 열리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후 청와대 주변이 ‘성역’화됐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경찰은 예외 없이 청와대 인근의 집회를 금지했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가 개최되기도 전 갑호비상령을 내리고 ‘불법’과 ‘폭력’ 프레임을 내세워 집회를 덧칠했다. 민중총궐기 당일 경찰은 거리의 화난 시민들의 목소리가 청와대에 닿지 못하도록 차벽과 물대포를 내세워 은폐(隱蔽)하고 엄폐(掩蔽)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에 닿지 못하게 세종로와 종로1가에 발을 묶는 데 경찰 버스 679대와 물대포 19대가 동원됐다. 그날 오후에서 늦은 밤까지 6시간 40분 동안 거리에 쏟아 부은 물의 양만 해도 202톤이고, 백남기 농민을 향했던 충남 살수차 9호가 6시 30분부터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까지 불과 40분 동안 최루액과 함께 쏟아 부은 물은 4,000리터(ℓ)였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 중 한 명이었던 백남기 농민은 경찰이 화난 거리의 목소리가 청와대에 닿지 못하도록 한 작전의 결과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결여는 거리에서 말할 자유 ‘없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권리에 기대지 않고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은 거대한 공권력을 동원해 덮어 감추려는 은폐와 엄폐의 틈새를 타고 다시 거리로 나오기 마련이다. 2월 24일 더 이상 청와대로 행진할 수 없는 광화문 광장 북단에 유령들이 나타났다. ‘2.24 앰네스티 유령집회’에 모인 무권리의 유령들이 진짜 사람들을 대신해 “우리는 불법이 아니다” “집회시위 보장하라”를 외쳤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12년 12월 14일 기자회견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문 후보가 보호하려는 인권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의 인권입니까?”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대통령의 지적은 정확하다. 인권, 특히 말하고 모이고 행진할 권리는 정부를 지지하느냐, 혹은 어떤 정치적 입장인지를 갈라 보장해 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소수의 목소리를 내는 통로라는 의미에서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가지는 의미는 더욱 크다. 특별히 이를 두고 민주주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대포와 차벽을 내세운 은폐와 엄폐로는 민주주의의 결여를 벗어날 수 없다. 대화와 소통은 민주주의의 기초다. 대통령은 이제 유령이 아닌, 권리를 가진 진짜 시민들을 만나야 한다. 청와대를 향해 평화로운 집회와 행진을 할 자유는 인권이다.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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