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에서 북한과 장사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만 줄잡아 10만명은 된다. 다들 이전과는 분위기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하고 있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28일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에서 만난 한 대북 사업가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중국이 그래도 북한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하면서도 “10년 넘게 대북사업을 해오는 사이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번은 좀 불안하다”며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이전과 분위기 달라”… 긴장감 고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접경한 단둥은 연간 63억달러(약 7조7,000억원)에 달하는 북중 무역의 70% 이상을 담당하고 있어 대북 무역의 관문으로 통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고강도 대북제재안이 통과되면 지역경제 전반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직간접적으로 대북 교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이유다. 북한에서 수산물을 들여오는 한 조선족 대북 사업가는 “북한이 일을 벌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한다”면서 “이런 일 터지면 북측에서 먼저 물품 공급을 한두 달 늦추자고 제안하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단둥세관 근처에 있는 무역상가의 분위기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 같으면 휴일에도 문을 연 상점들이 꽤 있었다지만, 이날은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북한의 수산물과 인삼 등을 들여와 파는 상점들이 많은 ‘고려거리’도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어렵게 말문을 연 한 대북 무역상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면서 “이전에는 (중국) 정부가 (대북제재) 시늉만 하고 끝냈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되면 좋을 텐데…”라고 말을 아꼈다.
대북 사업가들은 특히 이번에 공개된 대북제재안 초안 중 북한을 드나드는 선박의 모든 화물에 대한 검사를 의무화한 조항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20년 넘게 대북사업에 종사해온 한 사업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시간이 곧 돈인데 전수검사를 하느라 시간이 지체되면 그 자체로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북 사업가는 “어제 만난 중국인 파트너가 ‘해관(세관)에서 뭔가 지시를 했다던데 이렇게 되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더라”고 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안 초안에 북한의 대중 수출에서 42.3%를 차지하는 석탄을 비롯한 광물자원의 교역 금지가 포함되고, 중국 상무부와 해관이 관련기업들에 이에 대한 지시를 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현지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해졌다. 북한에서 석탄을 수입하는 회사의 직원은 “아직은 평소하고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말들이 많고 소문도 많아서 직원들이 다들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부동산경기 위축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자신의 중국인 친구가 압록강 황금평경제특구 개발과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기대하고 단둥의 신도시 격인 랑터우(浪頭) 지역 아파트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한 대북 사업가는 “지난 몇 년간은 그래도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를 하더니만 이젠 포기 상태더라”며 “부동산으로 재미를 보려고 투자했던 사람들이 꽤 있을 텐데 다들 걱정이 클 것”이라고 했다.
북중관계가 경색되면서 북한 식당을 찾는 현지 교민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한 대북 사업가는 “단둥에는 유경식당을 비롯해 북한에서 외화벌이 수단으로 운영하는 제법 큰 식당들이 많다”면서 “요즘 분위기도 그렇고 해서 나도 다음주에 있을 모임 장소를 바꿨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 기류에 촉각… “北 달라져야”
물론 단둥시민들의 일상 생활에 당장 큰 변화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바로 건너편에 신의주가 보이는 압록강대교 인근의 수변공원에는 이날도 많은 시민들이 나와 휴일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북한 땅 코 앞까지 오가는 유람선도 정상운항을 하고 있었고, 압록강대교를 거쳐 단둥에서 신의주로 들어가는 국제열차도 제 시간에 지나갔다.
앞서 중국 정부가 북한 선박들의 단둥항 입항을 금지했고 공상은행을 비롯한 일부 중국 은행들이 북한인 명의의 계좌 서비스를 중단했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사실과 다른 듯했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한 대북 사업가는 “압록강변 주요 항구를 위탁경영하는 르린(日林)그룹 측에서 인공기를 달고 입항하는 걸 거부해서 작년 말부터 단둥항에 북한 선박이 못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번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와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한 조선족 사업가도 “이 곳에서 장사하거나 일하는 북한 사람들 대부분이 현금으로 거래한다”며 “그게 몇 년 됐다”고 말했다. 중국이 이번 유엔 제재안 논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해 독자제재를 하는 움직임이 없고 앞으로도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베이징 외교소식통의 얘기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된 뒤 중국 당국이 실제로 어떤 태도를 보일지에 대해선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도 중국이 이번 제재에 어느 수준으로 동참할 지가 최대 관건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과 같은 이유다.
이런 가운데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펴는 이들도 있었다. 한 대북 무역상은 “근래 들어 북한 장마당이 이전보다 훨씬 활성화됐는데 거래되는 물건 대부분이 단둥에서 들어간다”면서 “이걸 틀어막으면 북한 내부에서 난리가 날 텐데 (중국 정부가) 그렇게 만들겠냐”고 반문했다. 다른 대북 사업가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전과는 달라 당분간 지켜봐야겠지만 아무리 밉고 화가 나도 중국이 북한을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많은 중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화가 나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달라지지 않으면 중국 정부도 이런 분위기를 계속 외면하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단둥=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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