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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아직도 미군정(美軍政) 시대인가

입력
2016.02.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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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논의 첫 발 떼는 날짜조차 美 허락에 목매는 국방부

류제승 국방정책실장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이날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 군사적 대책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제승 국방정책실장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이날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 군사적 대책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월요일인 22일 오후5시50쯤, 국방부가 출입기자단에 돌연 문자메시지를 뿌렸다. 23일 오전10시30분에 한미 공동실무단 약정체결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할 테니 엠바고(보도유예)를 유지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국방부가 ‘약정’이라고 한 것은 TOR(Terms Of Reference)로, 한미 양국 정부가 협상대표에게 위임할 내용을 정하고 향후 일정과 절차 등을 규정한 협상의 기본 틀이다. 따라서 약정을 체결한다는 것은 한미간 사드 논의를 곧 시작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방부는 당장 내일 배포할 보도자료 내용조차 알지 못했다. 23일 오전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곳곳에서 기자들이 성화였지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닫았다.

오전10시10분, 국방부는 “보도자료 배포를 연기한다”고 황급히 알려왔다. 설명이 걸작이었다. “미측에서 아직 통보가 오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측은 본토에 있는 국방부(펜타곤)가 아니라 서울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사령부다. 우리 국방부의 카운터파트는 엄연히 미 펜타곤인데도, 직접 펜타곤과 조율하지 못하고 그 예하부대인 주한미군사령부의 연락만 기다렸다는 얘기다. 63만명의 대한민국 국군을 지휘통솔하는 국방부의 체면을 여지없이 구기고, 심지어 ‘미군정의 부활’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이후 국방부는 약정체결에 대해 일언반구 얘기가 없다. 문상균 대변인이 “하루 이틀 늦어질 것”이라고 뒤늦게 읍소했지만 주말인 27일이 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유엔 안보리가 주말을 거쳐 대북결의안을 채택한 이후로 사드 논의가 밀렸다는 얘기다. “안보리 결의와 사드 배치는 상관없다”는 국방부 설명에 배치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27일 “벌써부터 이처럼 미국 눈치만 보는데 본격적인 사드 논의가 시작되면 어떨지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이런 망신을 자초한 것은 준비되지 않은 ‘졸속 커밍아웃’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동북아에서 사드를 둘러싸고 전개될 미국의 전략적 고려와 미중 관계의 복잡한 속내를 알지 못했거나, 애써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은 탓이다.

시간을 거슬러,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이 사드 배치 필요성을 처음 강조한 이래 국내 부지 선정 등을 놓고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논의 자체를 금기시했다. 외교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면밀한 평가 없이 국방부는 마치 주문을 읊어대듯 전략적 모호성만 앞세우며 그늘에 숨는데 급급했다.

그 사이 중국은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지휘부가 돌아가며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한민구 국방장관은 원칙론만 되풀이하는데 그쳤다. 비판이 커지자 국방부는 뒤늦게 ‘3NO(사드 배치에 대해 미측의 요청, 협의, 결정 없음)’라는 좀더 세련된 표현으로 예봉을 피해갔지만, 사드는 지하경제를 맴도는 사채업자마냥 여전히 음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북한이 지난 7일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자 국방부는 5시간 만에 기다렸다는 듯 미국과의 사드 협의 개시를 선언했다.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놓고 벌어질 ‘큰 판’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조바심을 낸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드 외에는 우리 군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맞서 내놓을 대책이 딱히 없기도 했다. 국민을 상대로 뭔가 보여줘야 하는데 입장이 군색했던 것이다. 이후 항공모함, 핵잠수함, F-22스텔스전투기 등 한반도에 무력시위가 잇따랐지만 모두 미군의 전략자산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다음주면 미측과의 사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미측이 중국을 안보리 대북제재에 끌어들이기 위한 지렛대로 공공연히 사드를 이용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측과 협의자체를 무산시키면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후폭풍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부디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회의 날짜를 잡아 미측에 통보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다. 국방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주도할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는 이미 접은 지 오래다. 다만 회의 일정과 절차를 정하는 형식적 측면만이라도 제목소리를 내는 정상적인 상황이 전개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차피 이해관계를 주고 받아야 하는 국가간 협상 아닌가. 더구나 사드는 좋든 싫든 우리 땅에 배치할 무기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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