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태평양사령관 “협의한다고 배치하는 건 아냐” 기존 입장 뒤집어 발뺌
국방부 “코멘트 할 것 없다” 미국만 바라보다 동네북 신세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중국과의 협상 카드로 이용해 온 속내가 드러나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논의에 돌입한 25일(현지시간) 미 군부는 사드 배치 철회 가능성을 처음 언급하며 입장을 교묘히 바꿨다. 미국이 사드 배치를 놓고 확연히 속도를 조절하면서 미국만 바라보던 우리 국방부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는 한탄마저 나온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은 이날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에서 브리핑을 갖고 “사드 배치를 협의하기로 한 것이지, 한반도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리스 사령관은 이틀 전인 23일 의회 청문회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한국 방어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에 반대하면서 한미간 틈새를 벌리려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중국을 정면 비판했다. 23일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미국을 찾아 존 케리 국무장관과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담판을 벌인 날이다. 사드를 협상카드로 삼아 중국을 압박하려는 미 군부의 지원사격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해리스 사령관은 지난달 25일에는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은 흥미로울 뿐”이라며 가소롭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7일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공언한 한미 양국의 사드 공식협의가 차일피일 미뤄지며 잡음이 커지자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은 24일 “한미 공동실무단이 1주일 내에 첫 회의를 할 것”이라며 애써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그의 직속상관인 해리스 사령관이 불과 하루 뒤에 “사드 협의과 배치 결정은 다르다”고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날 한국을 방문한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사드 배치에 대해 “사드는 외교적 협상 카드가 아니다”면서도 “(사드) 논의 시기와 의사결정과 관련된 조치는 외교관들이 아닌 군(軍)에 있는 동료들과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행해질 것”이라며 공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조속한 사드 배치를 강조해 온 우리 국방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해리스 사령관의 발언과 관련해 코멘트 할 입장이 아니다”며 “미측과 논의를 계속 하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정부 관계자는 “밥상을 차리기도 전에 고춧가루를 뿌린 셈”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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