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스포츠를 목적으로, 비포장 도로 같은 험한 길을 달리는 능력이 뛰어난 차량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 땅의 SUV들은 매끈한 겉모양, 포장도로에나 적합하고 단단한 서스펜션, 튼튼한 프레임보다는 가벼운 모노코크(프레임 없이 철판을 박스형으로 붙이는 방식) 등으로 치장하고 있다. 진정한 SUV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기아자동차의 ‘모하비’는 국산차 중 SUV의 정의에 가장 근접해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5 퇴출로 작년 9월 생산이 중단됐던 모하비가 유로6 기준을 충족하는 엔진을 싣고 반년 만에 돌아왔다. 환경적으로는 착해졌지만 외형부터 주행성능까지 그 유전자(DNA)는 잃지 않았다.
모하비의 주행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23일 경기 고양시 엠블호텔을 출발, 자유로를 거쳐 연천군을 돌아오는 130여㎞를 달려봤다. 이 구간에는 연천군 비룡대교 인근 임진강 자갈뜰 비포장 2㎞ 주행도 포함됐다. 시승차는 노블레스(2륜 구동ㆍ4,025만원), VIP(4륜 구동 선택사양ㆍ4,251만원), 프레지던트(4륜 구동ㆍ4,680만원) 중 가장 상위 트림이었다.
외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면부 그릴은 밋밋한 가로줄에서 안드로이드폰 충전단자 형태의 구멍을 반복적으로 뚫어 입체감을 살렸다. 앞 범퍼 하단부터 사이드 스커트를 거쳐 뒷 범퍼로 이어지는 스키드 플레이트를 두껍게 만들어 강인한 인상을 준다. 사이드미러와 휠에 크롬을 사용한 것도 전작과 달라진 점이다.
실내 디자인은 완전히 다른 차로 느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센터페시아 상단에 자리한 8인치 내비게이션 아래로 공조장치 조작 버튼을 모아놨다. 온도 조절 스위치는 다이얼로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잘 정돈된 느낌이다. 후측방 접근차량, 차선 이탈, 전방 추돌 경보시스템 등 최신 안전사양들이 대폭 적용됐다.
모하비의 일반도로 주행성능은 거칠다. 시속 80㎞까지 가속성능은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최고출력 260마력, 최대토크 57.1㎏ㆍm를 내는 3ℓ 디젤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공차중량 2,290㎏짜리 거구를 힘있게 밀어준다. 그러나 시속 100㎞에 가까워질수록 가속은 더뎌지고 전면 유리창부터 시작하는 풍절음이 시작된다.
오프로드용 차량에 가깝게 설계해 서스펜션이 무른 편이어서 급회전 구간을 빠르게 돌아나갈 때 휘청거리는 느낌도 여전하다. 프레임에 자체를 얹어 만든 방식이라 노면 소음도 여타 모노코크 SUV보다 크다. 물론 전작과 비교하면 힘은 좋아진 반면 흡ㆍ차음재를 더 많이 붙여 실내에서 느끼는 소음은 많이 줄었다.
모하비의 진가는 역시 오프로드에서 나왔다. 굴곡이 심한 비포장 도로를 지날 때 느낌은 확실히 탄탄하다. 전륜 서스펜션이 유압식 리바운드 스프링을 새로 장착해 가볍게 꿀렁거리는 느낌이 거의 없다. 도로 오른쪽 2m 정도 되는 둔덕을 오르려다 차가 기우뚱 했다. 후사경으로 보니 오른쪽 뒷바퀴가 들린 채 세 바퀴로만 지탱한 상태였다.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보니 잡음 하나 없이 잘 열리고 닫혔다. 강성이 좋은 프레임 바디가 아니면 차체가 뒤틀려 삐걱거리거나 아예 문이 닫히지 않을 수도 있다.
등판성능도 우수했다. 30%(100m를 주행할 때 높이가 30m 올라가는 경사도) 오르막에서 중간에 정지했다가 출발할 때도 힘이 부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도로상황에 맞춰 앞뒤 바퀴의 토크를 최적으로 분배할 수 있도록 모래밭, 눈길, 바위, 진흙 등 모드를 변환할 수 있는 장치나 서스펜션 압력을 조절하는 시스템을 장착했으면 정통 SUV에 더 가까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22일까지 모하비의 사전계약 실적은 5,700대를 넘어섰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작년 생산 중단 이후 새 모델이 언제 나올 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모하비를 사겠다고 예약한 사람들이라고 기아차는 설명했다. 그만큼 오프로드 마니아들에게 모하비는 충분히 매력적인 차다.
허정헌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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