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한 조각 황량한 광야의 고독이 필요하다.”
사막 여행자 아킬 모저가 사막으로의 여행을 권하며 던진 말이다. 지구상에 버려진 것만 같은 땅. 하지만 사막은 아름답다. 정적이 도는 황량한 사막에 서면 벼랑 끝 긴장, 그 깊은 울림에 온 몸이 전율하게 된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나미비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으로 꼽히는 사막이 있다. 나미비아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그 사막 때문에 나미비아를 찾게 만드는 나미브(Namib) 사막이다. 붉은 모래언덕의 황홀한 명암의 대비로 전세계 사진작가들을 불러모으는 곳이다. ‘꽃보다 청춘’ 팀이 나미비아를 갔으니 그들도 분명 나미브 사막의 매력에 흠뻑 빠졌으리라.
사막은 나미비아의 대서양 연안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그 폭이 80~140km에 달하는 모래의 바다로 면적은 남한의 1.35배, 세계에서 24번째로 큰 사막이다. 나미브 사막의 모래는 유독 붉고 미세하다. 철 성분이 많은 모래가 오랜 산화작용을 거쳤기 때문이다. 밤새 바람이 치올려 듄의 능선을 만들어 놓으면 뜨거운 태양이 빛을 토해내며 그 능선에 날카로움을 더해준다.
나미브 사막의 하이라이트는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의 소수스플라이(Sossusvlei)다. 그 소수스플라이로 들어가는 입구인 세스리엠에는 이른 새벽 차량들이 길게 늘어선다. 게이트가 열리면 재빨리 소수스플라이로 달려가기 위해 줄을 선 것이다. 사막의 듄이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때는 이른 아침이기에 모두들 마음이 급하다.
소수스플라이의 가장 유명한 사구는 ‘듄 45’.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 듄45를 향해 내달린다. 하지만 그들과 꼭 경쟁해 먼저 도착할 필요는 없다. 가는 길의 다른 사구도 충분히 깊은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
바람이 밤새 치어 올린 듄의 능선은 날카롭다. 그 선을 경계로 붉게 타오른 사면과 검게 드리운 그림자가 분명하게 나뉘어진다. 불룩 튀어나온 듄의 아랫부분에선 비스듬히 태양의 빛을 받아 그림자가 물결치고, 그 빛에 따라 명과 암이 엉키며 조화를 부린다. 황홀한 그러데이션이다.
듄의 능선을 따라 시선을 올리면 빛과 그림자의 충돌이 극명해진다. 명과 암. 그 사이를 가르는 날카로운 칼날의 곡선에 그만 마음이 베인다. 결코 지울 수 없는, 가슴 속 황홀한 감동의 문신이 새겨지는 순간이다.
유명한 듄45의 이름에 대해 일부 여행서는 소수스플라이 입구인 세스리엠에서 듄45까지의 거리가 45km라서 45란 숫자가 붙었다고 쓰고 있다. 틀린 이야기다. 사막의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이 근방의 듄 몇 개에 번호가 부여됐을 뿐이라고.
둥글게 감싸 올라간 듄45의 능선은 곱다. 모래언덕을 감상하는 최고의 방법은 신발을 벗고 그 능선에 발을 올리는 것이다. 음과 양 사이 그 칼날 같은 능선을 걷는다. 단 몇 cm 차이지만 양지는 따뜻하고 그늘은 차갑다.
시야가 높아질수록 사막의 광활함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소수스플라이의 플라이는 납작한 냄비처럼 아래가 푹 꺼져 평평한 지형이다. 사막에서만 발달하는 마른 강 와디(wadi)의 바닥이다.
사막 한가운데 뻥 뚫린 이 공간에 이끼 같은 연둣빛 덤불이 자라고 있다. 모든 생이 사라진 공간이었을 것만 같은 공간에 생명이 움을 틔우고 있다. 덤불뿐이 아니다. 맨발이 디디는 듄의 능선에선 새까만 딱정벌레들이 튀어나오기 일쑤다. 일교차를 이용해 몸뚱이에 고인 이슬을 받아 먹고 산다는 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불모의 땅에선 이따금 하얀 나비도 펄럭인다.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말이다.
나미비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PS
아킬 모저는 사막 여행은 이런 것이라고 정리했다.
-웅장한 원시 세계와의 만남
-걱정 근심의 무거운 짐 내려놓기
-하늘 높이 뛰어오를 듯 기쁜 삶의 감정
-오랜 근본적 가치의 재발견
-신중한 발걸음의 감동
-외로움과 순결함의 만남
-아주 작은 자기 자신의 발견
-영혼의 미로 속에서 감행하는 위태로운 줄타기
-문명이 만들어낸 스트레스에 대한 만병통치약
(더숲 출간 ‘당신에게는 사막이 필요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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