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2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소득 신고서에 서명하는 모습이라며 올린 사진. 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삼일절(3월1일)에는 한국에서만 학교가 쉬는 줄 알았는데, 올해는 기자가 사는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도 공립 학교가 쉰다. 버지니아도 포함된 14개 지역에서 대통령 예비 경선이 동시 치러지는 ‘슈퍼 화요일’에 투표소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아직 당내 경선이어서일까. 공공장소, 길거리, 주택가를 막론하고 대선 분위기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컴퓨터를 켜면 상황은 다르다. 참정권 없는 외국인이지만, 아이오와 코커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취재를 위해 주요 후보 캠프에 등록을 했기 때문인지 매일 이메일이 수북하다.

흥미로운 건 캠프마다 이메일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다. 힐러리 클린턴, 마르코 루비오 캠프에서 보내온 메일들은 간단한 후보 동정 소개와 함께 기부를 요청한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진영은 딴판이다. 돈 얘기가 없다. 대신 지지자들을 지역별로 묶어서 개별 모임을 갖게 하고 선거 운동에 나서도록 하는데 주력한다. 독립 투사들이 비밀 회합을 갖듯이 ‘미국을 다시 강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고취시키며 지지자들을 끌어 모은다.

좌충우돌 행보와 언사가 거칠어서 그렇지 트럼프는 선거운동으로만 따지면 가장 모범적인 후보다. 보유 재산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후보 대비 압도적으로 많은 사재(私財)를 선거 운동에 투입하고 있다. 캠프가 조성한 2,500만달러 중 70% 가량을 트럼프가 기부(25만달러)하거나 자신 명의로 차입해서 충당하고 있다. 트럼프와 맞서는 루비오, 테드 크루즈는 자기 돈을 단 한 푼도 들이지 않은 채 모두 외부 기부에 의존하고 있다.

선거 운동의 효율성도 최고다. 네바다 경선 이전까지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가 1명의 유권자를 얻는데 쓴 돈은 64달러에 불과하다. 루비오(153달러), 크루즈(193달러), 젭 부시(368달러), 벤 카슨(795달러)의 최소 2배ㆍ최대 10배 효율적이다. 이쯤 되면 트럼프가 공화당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공화당 최종 후보가 되는 게 천심(天心)보다 강하다는 민심(民心)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과연 민심이란 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트럼프가 중산 이하 백인계층에서 끄집어 낸 건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다. 삶이 고단한 걸 외부 탓으로 돌린다. 높은 임금 대비 낮은 생산성, 높은 이혼율 등 자신들의 문제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래서 ▦불법 이민자 추방 ▦무슬림 입국금지 ▦안보 무임승차국(한국ㆍ독일ㆍ일본 등)에 대한 분담금 증액 등 화살을 외부로 돌린 해법만 제시한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현실성 없다’고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구체적 자료 없이 그저 ‘트럼프가 하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런 트럼프 말을 최소 20% 미국인들은 진실로 받아들인다.‘일반 대중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원시적이다. 지식인들이 반대해도 무시하고 모든 문제를 단순하게 축소시키고 단순한 언어와 이미지로 끊임없이 반복하면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는 나치 독일의 선전ㆍ선동을 연상시킨다.

슈퍼 화요일이 코앞으로 닥치자 ‘설마’하고 바라보던 공화당 주류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민심을 거스르려고 마지막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공정한 경선 관리 때문에 대놓고 압력을 가하지 않지만, 다양한 경로로 주류의 힘을 루비오 의원 쪽으로 몰아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은 게 아니냐’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미국 지식인들을 당혹과 절망에 빠뜨린 트럼프 돌풍은 한국에 어떤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까. 아마 ‘민심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특히 내부 개혁대신 외부에 잘못을 돌릴 때는 더욱 그렇다’일 듯싶다.

조철환 워싱턴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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