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내전으로 80만명 희생
우간다 난민촌서 처음 접한 후
가해·피해자 함께 하는 스포츠로
선수 7000명에 국제대회도 출전
가장 큰 경기장도 흙·자갈 투성이
"英이 경기장 건설" 희망 부풀어
‘80만 대학살’이라는 현대 비극사를 가진 중앙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크리켓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크리켓 대중화 국가들과 인접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크리켓이 유행을 한 적은 있지만, 아프리카 한 가운데 위치한 빈국에서 영미권 스포츠가 인기는 얻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 등의 보도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르완다는 크리켓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2015년 현재 전국에 걸쳐 등록된 선수만 7,000여명에 이른다. 일반 남성팀이 11개팀, 여성팀 5개팀이고, 대학팀도 8개나 된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팀이지만 오는 4월에는 국가대표팀을 꾸려 국제 크리켓 협의회(ICC) 지역 토너먼트에도 출전할 예정이다. 르완다 크리켓협회 찰스 하바 회장은 “우간다 난민 캠프에서 크리켓을 배운 뒤 예닐곱 명의 동료들과 함께 르완다에 크리켓을 전파하기 시작했다”며 “이제 크리켓은 르완다 국민에게 슬픈 역사를 치유하는 ‘스포츠 힐링’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 열망과는 달리 크리켓 시설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르완다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수도 키갈리의 키쿠키고 오벌 크리켓 구장 필드에는 잔디는 고사하고 흙과 돌들로 울퉁불퉁하다. 군데군데 콘크리트 덩어리가 흙바닥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낸 곳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수들이 부상 부담은 물론 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실제로 팀내 최고 강견으로 꼽히는 에릭은 시속 130㎞ 정도의 공을 뿌린다. 제대로 된 도움닫기를 하면 더 빨리 던질 수 있지만 무리하지 않는다. 투구판이 녹이 슬고 낡아 발끝에 걸리는 바람에 넘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돈드디유 무기샤 선수는 불규칙 바운드를 처리하려다 얼굴에 공을 맞고 앞니 두 개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르완다 크리켓은 희망을 꿈꾸고 있다. 특히 영국의 한 자선단체가 이곳에 새 크리켓 경기장 건설을 위해 모금활동에 나서면서 기대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80만 파운드를 모금한 가운데, 내년 3월까지 25만 파운드를 더 조달해 잔디와 피치(pitch), 위킷(wecket) 등의 기본 시설과 선수실, 관중석을 완비한 국제 경기장을 지을 예정이다. 자선단체 관계자는 “국제 경기에 르완다 국가대표 팀을 꾸려 세계 강호들과 당당하게 기량을 겨룰 날이 머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현대사의 슬픔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크리켓을 선택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르완다 국민들은 아직도 94년 대학살의 악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후투족 출신 쥐베날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이 전용기 격추 사고로 숨지자 후투족 강경파가 투치족과 후투족 온건파를 향한 피의 보복에 나서 전 국민의 10%에 해당하는 80만여명을 학살했다. 같은 해 7월 투치족 ‘르완다 애국전선’이 키갈리를 탈환하면서 내전은 종료됐지만, 그 여파는 쉽게 씻을 수 없었다. 르완다 크리켓팀의 붙박이 선두타자 비어링기로 어우디팍스(24)는 “당시 아버지와 큰형이 누구에게 왜 어떻게 살해됐는지, 그리고 시신은 어디에 있는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알 길이 없다”면서 “또 다른 형은 수류탄에 한쪽 다리를 잃었고 머리에는 파편이 그대로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2007년부터 크리켓을 시작한 그는 암울했던 사춘기 시절 동네 친구들과 크리켓을 하며 사회성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슬픔에 빠진 국민들을 일으켜 세우고 단결시키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어우디팍스는 “적어도 크리켓 운동장에서는, 그리고 크리켓을 할 때에는 그날의 악몽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학살의 골이 너무 깊고 넓다 보니 피해자와 가해자의 피붙이들이 한 경기장에서 만나야 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선수들 중에는 학살로 인해 고아가 된 경우도 있고 소년ㆍ소녀가장 출신도 있다. 서로를 죽이고 죽인 ‘불구대천’ 지간이 이제는 크리켓선수라는 이름으로 함께 뛴다는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키쿠키고 오벌 크리켓구장 한쪽에서는 대학살 당시 살해됐던 이들의 해골과 뼛조각들이 발견됐다. 대학살 당시 이곳에서 2,000여명의 투치족이 후투족 무장단체 ‘인테라함웨’에 의해 살해됐다. 찰스 하바 르완다 크리켓협회장은 “이는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하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크리켓을 통한 화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크리켓은 11명의 팀원이 뜻을 모아 하나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볼러(투수)는 위켓키퍼와 호흡을 맞춰야 하고 타자는 효과적으로 달리기 위해 사인을 주고받아야 하며, 야수는 다른 사람들과 위치 등을 끊임없이 조율해야 한다.
크리켓 인기 비결에 대해 정치적 해석도 있다. 르완다는 대학살 책임 공방 끝에 2006년 프랑스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한 뒤, 영ㆍ미권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친 영미 정책의 일환으로 공용어로 기존 불어 외에 영어를 채택하는가 하면 영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크리켓을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크리켓 경기 방식은
팀당 11명으로 편성된다. 타원형 경기장 한가운데 ‘피치’라는 직사각형이 주 무대다. 이곳에서 볼러(투수ㆍbowler)와 배트맨(batsmanㆍ타자)이 대결한다. 피치 양 끝에는 두 개의 기둥(위킷ㆍwecket)이 있다. 야구로 치면 베이스다. 투수가 위킷 한쪽 끝에서 공을 던지면 타자가 이를 받아 친다. 반대쪽 위킷에 서 있던 주자는 타자쪽 위킷으로 달려간다. 두 선수가 교차해 반대쪽 위킷에 배트를 대면 1점을 얻는다. 아웃 카운트 10개를 잡아야 공수가 교대되기 때문에 체력과 집중력이 관건이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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