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 세기의 바둑대결을 마친 이세돌(33) 9단은 조훈현(63), 이창호(41)의 계보를 잇는 국내 최정상의 기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바둑계에선 개성 넘치는 기사로도 주목 받아 왔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요”라는 어록에서 볼 수 있듯 언제나 자신감도 넘쳐 많은 팬들을 보유했다. 그런 그의 바둑인생은 누구보다도 흥미진진했다. 바둑 기사로는 흔히 겪기 힘들었던 반전의 순간들을 되짚었다.
바둑 전도사 ‘귀요미 이세돌’
승부사 이세돌에게도 환한 웃음, 친절한 어투로 어린이들을 대하던 ‘귀요미’ 시절이 있었다. 이세돌은 지난 2004년 여성 바둑기사 한해원(34)과 KBS 2TV 바둑만화 ‘고스트 바둑왕’의 말미에 방송되는 ‘신나는 바둑나라’ 코너의 진행을 맡았다.
그날 방송된 만화에서 다뤄진 내용들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코너였다. 당시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 바둑 붐을 조성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싶다”고 밝힌 그는 잇단 방송 출연으로 승부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방송과 승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결국 그의 말이 맞았다. 이세돌은 그 해 삼성화재배, 도요타배 등을 휩쓸며 바둑계의 우려를 잠재웠다.
승부사 기질 발휘한 ‘1인자 휴직사태’
위기에 봉착하면 필살의 승부수를 띄우는 이세돌의 강한 기질은 2009 벌어진 바둑계 초유의 ‘1인자 휴직사태’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그는 한국바둑리그의 대진 방식이 상위 랭커에게 불리하다며 대회불참을 선언, 바둑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프로기사 총회에서 “뭔가 조치를 해야 한다”며 사실상의 징계를 결의하자 이세돌은 “동료기사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며 휴직계를 낸 뒤 홀연히 잠적했다.
한국 바둑 1인자가 사라진 뒤 중국에 패권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바둑 팬들의 이세돌 복귀 요청이 잇따랐고, 그는 휴직 6개월만인 2010년 1월 바둑계에 복귀했다. 이후 국내외 각종 대회를 휩쓴 그는 그 해 바둑리그에서 소속팀 신안 천일염에 창단 첫 우승을 안기며 MVP를 거머쥐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멋쩍은 금메달’
활동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바둑도 엄연한 스포츠종목 중 하나다. 대한바둑협회는 지난 2002년 대한체육회의 가맹단체로 등록했다. 특히 바둑이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이 대회에 걸린 3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세돌은 남자 단체전에 출전해 멋쩍은 금메달을 땄다. 대회 전부터 확실한 1승 카드로 꼽힌 그였지만 이창호, 강동윤, 최철한이 이긴 가운데 유일한 패배를 기록했다. 당시 바둑대표팀의 아시안게임 출전 준비 과정부터 눈길을 끌었다. 대표팀의 일원으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해 체력훈련 및 도핑테스트 등을 거치기도 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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