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빗방울이) 듣다’처럼 점점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낱말 두어 개를 보았다. 이번 주에는 그 연장으로 준말 두어 개를 보고자 한다.
‘쌔고 쌨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 흔한 경우를 가리켜 자주 쓰는 말이다. 이 ‘쌔다’의 정체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말은 ‘쌓이다’의 준말이다. 그런데 ‘쌓이다’에 비하여 ‘쌔다’는 거의 쓰임이 없는 말로서 ‘쌔고 쌔다’와 같은 관용적인 형식으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이다. 눈이 ‘쌓여 있다’라고 하지 ‘쌔어 있다’라고는 거의 하지 않는 것이다. ‘쌔다’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것도 그만큼 이 말의 활동 영역이 좁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폐다’는 사정이 더 심각한 예이다. 이 말은 ‘펴다’의 피동형인 ‘펴이다’의 준말이다. 대표적으로 ‘형편이 폤다’와 같은 용례를 들 수 있다. 구김살이 펴지듯이 형편이 순조롭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다만 이 준말 ‘폐다’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 경우 흔히 쓰는 말은 ‘피다’이다. 즉 ‘형편이 폈다’와 같이 말한다. 꽃이 피어나듯이 살림살이도 피어나는 것이다. ‘형편이 [펟따]’와 같이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폤다’가 아니라 ‘폈다’가 ‘며느리>메느리’처럼 모음이 단순화한 결과일 것이다.
어쩌면 ‘형편이 폐다’라는 표현은 앞으로 다시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놓이다’의 준말 ‘뇌다’, ‘까이다’의 준말 ‘깨다’, ‘더럽히다’의 준말 ‘더레다’ 등도 비슷한 처지의 말들이다. 우리말에는 생명력을 거의 잃고 국어사전 한구석에 잠들어 있는 이런 준말들이 적잖이 있다. 이 말들이 새로 힘을 얻기는 어렵겠지만 소중한 우리말이기에 되새겨 보았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