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윤동주, ‘쉽게 씨워진 시’ 중ㆍ초판 표기법 그대로 옮김)
지난 주말 영화 ‘동주’를 봤다. 영화관을 나와 찾아간 서점 속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그의 시집 초판 복제본이 놓여 있었다. 작고 어설픈 시집에서는 독립국가의 주권에 대한 그 시절의 사람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시집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평온했다. 분주한 거리를 지나쳐 아파트 단지로 다시 들어올 무렵 영화 속 식민지 청년들의 좌절과 고뇌는 지난밤의 꿈처럼 멀어졌다. 그럼에도 그가 사랑한 모국어로 쓴 시들은 여전히 숙연하고 아름답다. 아마도 나는 한참 동안 영화의 장면 장면을 되새기고 시의 구절을 되풀이해서 읽을 듯하다.
친구인 강처중은 유고시집의 발문에서 “그는 간도에서 나고 일본 후쿠오카에서 죽었다. 이역(異域)에서 나고 갔건만 무던히 조국을 사랑하고 우리말을 좋아 하더니 … 그는 나의 친구기도 하려니와 그의 아잇적 동무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의 죄명으로 2년 형을 받아 감옥에 들어간 채 마침내 모진 악형에 쓰러지고 말았다.”라고 그의 삶을 설명했다. 강처중이 발문 중간에 긴 여운으로 아쉬움을 표할 만큼 윤동주는 모국어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갔음에도, 민족과 모국어를 버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윤동주가 이국의 다다미방에서 웅크려 밤을 새던 영화 속 장면과 천명, 육첩방, 남의 나라란 시의 구절은 내 머릿속에 겹쳐 맴돈다.
‘동주’와 같은 영화가 이제야 나온 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준익 감독이 지적한 것처럼 유럽은 전범 국가인 독일에 대해 끊임없이 악행이 제기하고 문책했지만, 우리는 일본을 제대로 추궁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윤동주의 죽음을 기리는 것은 일본 군국주의의 부도덕성을 추궁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작업이다. 잘못을 꾸짖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못을 가르치는 일이다. 부끄러운 과거로부터 도망칠 핑계만을 찾는 일본에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일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본에게 부끄러워하라며 꾸짖고 이웃들에게는 함께 분노하기만을 요구할 뿐, 그 근거를 제시하거나 설명하는 데는 소홀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는 다행히도 이 시대의 우리에게 그 책임이 있음을 일깨워줬다.
‘동주’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일보 라제기 기자의 비유처럼, 많은 상영관이 좋은 시간대보다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상영 시간을 배정하는 이른바 ‘퐁당퐁당’ 방식으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주”를 본다는 것은 요사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감정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슬프다’란 형용사, ‘분하다’란 문구만으로는 내가 겪은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유지되는 침묵, 성공하지 못한 식민지 청년들의 삶이 우리에게 부여한 윤리적 우월성, 그런 시인과 모국어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화려한 영화 포스터들 속에서 흑백의 윤동주와 그의 친구인 송몽규를 찾고 다시 출판된 그의 시집을 읽는 것 역시 윤동주의 모국어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오늘날을 사는 우리의 자긍심과 책임감을 일깨울 수 있는 기회다.
그가 거닐던 서강(西江)엔 풀벌레 끊어지고 신촌의 산책길은 사라진 채 고층 빌딩만 가득하지만(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다행히 영화 ‘동주’를 통해 우리는 식민지 시대의 윤동주를 만날 수 있다. 혹시 지금 모국어로 말하고 쓰고 다투는 일상의 감격스러움을 잊어버리고 있다면, 주말에 조금 한가한 영화관에서 이 생경하면서도 자랑스러운 영화를 직접 보기를 권한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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