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신임 조달청장에 정양호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이 임명되면서 기획재정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인 조세심판원장에 이어 기재부 외청인 조달청장 자리까지 다른 부처 출신에게 내주게 되면서다. ‘기재부 전성시대’라는 말까지 들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시절이 끝나자마자 벌어지는 일이어서 기재부 내부에선 격세지감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조달청장 인사를 두고 관가에선 ‘깜짝 발탁’이란 해석이 중론이다. 역대 조달청장 중 산자부 출신은 처음인데다, 최근 10년 동안 내부 승진 한 차례를 빼면 모두 기재부 출신이 독식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전혀 예상 못했던 인사”라며 “얼마 전 장관 자리를 기재부에 내 준 산자부에 대한 보상 차원이 아니겠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주형환 산자부 장관은 지난달 13일 기재부 1차관에서 자리를 옮겼다.
기재부 안팎에선 이번 인사를 기재부 전성시대가 저물어 가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앞서 지난 1일 그간 예외 없이 세제실 국장급 간부가 가던 조세심판원장 자리를 총리실 내부 출신에게 내줬는가 하면, 최근엔 기재부 출신인 김형돈 전 조세심판원장이 전국은행연합회 전무이사로 가려다가 취업제한에 걸려 좌절된 일도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최경환 전 부총리 시절과는 정반대의 풍경이다. 지난달 7개 부처 장ㆍ차관급 인사에서 이석준 국무조정실장과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기재부 출신이 4명이나 발탁되면서 관가에서는 정부 요직을 기재부가 독차지한다는 시기의 목소리가 높았다. 작년 하반기 임명된 주형환 장관과 강호인(전 기재부 차관보) 국토교통부 장관, 방문규(전 기재부 2차관) 보건복지부 차관도 모두 기재부 출신이었다.
기재부에선 대대로 세제실장 출신이 영전해 나가던 관세청장의 인사 소식이 잠잠한 것도 걱정거리다. 조달청장과 함께 인사가 날 것으로 전망됐는데, 최근엔 아예 총선 이후로 인사가 미뤄질 거란 설이 확산되고 있다. 조달청장과 관세청장으로의 이동 경로가 막히자 고위 간부의 영전 이후, 차례로 승진 순서를 기다리던 국장급 간부들까지 줄줄이 속을 태우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재부 외청(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가운데 정작 기재부 출신이 수장으로 있는 곳은 관세청만 남게 됐다”고 허탈해 했다.
한 경제계 고위인사는 “막강했던 최경환 전 부총리의 ‘인사 파워’ 만큼이나 당시 막차를 타지 못했던 기재부 인사들의 박탈감은 더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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