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전환 과정 잇단 헛발질
5자회담ㆍ개성공단ㆍ사드 등 심각
중국 대사 방자한 협박도 그 결과
정부의 실책이 불필요한 논란과 불신을 증폭시킨 주범이다.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정부가 대북정책을 일대 전환하고 있는 최근 상황 얘기다. 상황의 근본 책임이 북한에 있음은 명백하다. 북한은 4차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논의되는 와중에 다시 장거리미사일 발사라는 정면 도발을 감행했다. 대놓고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나왔다. 따라서 개성공단 중단을 비롯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은 그것이 ‘햇볕정책’의 최종적 폐기를 의미하든 아니든, 그럴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이 있었다.
국민 다수도 정부의 선택을 지지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개성공단 중단 발표에 “진짜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인지”라며 정부에 날을 세웠다. 대북 강경책이 총선에서 보수층 결집을 노린 ‘북풍공작’ 아니냐는 음모론도 나돌았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55%가 개성공단 중단을 ‘잘한 일’로 평가했다. 대통령 지지율도 이전 대비 2% 포인트 상승한 43%로 나타났다. 제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햇볕정책에 기대 북한을 상대할 상황이 아니라는 다수의견이 확인된 것이다.
충분한 명분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 전환을 두고 불신과 혼선, 국제적 갈등이 계속 불거지는 건 ‘총론’을 견실하게 뒷받침하지 못한 ‘각론’의 취약성 때문이다. ‘5자회담’ 주장만 해도 그렇다. 박 대통령이 정책전환의 신호탄으로 직접 거론한 이 얘기는 지난 2003년 이래 한반도 평화논의의 핵심 틀이던 ‘6자회담’ 폐기를 시사한 중대 발언이었다. 5자 회담론이 이전부터 있었다 해도, 외교부는 최소한 당사국 호응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과 적절한 레토릭을 가다듬어야 했다. 하지만 느닷없는 발표에 중국과 러시아가 즉각 제안을 일축함으로써 우리만 꼴사나워졌다.
개성공단 중단 과정은 더 개탄스럽다. 아무리 결단이 절실했다고 해도 124개 입주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마땅히 재고 반출 등 기업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이 사전에 논의되고, 합당한 수순이 강구됐어야 했다. 하지만 “기업 피해를 예상했다”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사전 대책이 논의된 흔적은 전혀 없다. 마치 6ㆍ25 전쟁 때 한강철교 폭파하듯 일을 해치웠으니, 당장 기업들은 죽네 사네 난리를 치고, 장관은 불가피성을 강조한다며 근거도 불확실한 ‘개성공단 자금 핵개발 유입 증거설’을 거론했다가 망신을 자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드 도입을 둘러싼 우왕좌왕은 외교ㆍ안보팀의 어설픈 일처리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이래 구축된 4자ㆍ6자 회담 틀에서 북한의 핵 개발 저지 목표가 달성되지 못한 데는 중국의 책임이 크다. 그래서 이번 국면에서 우리는 중국에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할 충분한 명분을 가졌다. 유엔 결의든 양자 차원이든, 북한 핵개발을 저지할 실효적 행동에 나서지 않는 한 중국도 우리의 자위적 선택에 대해 시비를 걸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정부가 중국의 행동을 기다려 보지도 않은 채 대뜸 사드 도입을 기정사실화하는 바람에 칼자루를 오히려 중국에 넘겨준 꼴이 됐다. 충분한 명분 축적 과정을 건너 뛴 성급한 일 처리로 미ㆍ중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을(乙)’의 처지를 자초한 것이다.
외교안보 사안을 드러난 것만 보고 따지는 건 분명히 한계가 있다. 하지만 현 외교ㆍ안보팀의 행보는 과거의 어느 때와 비교해도 어설퍼 보인다. 그 결과가 안으로 국론 분열을 증폭시켰고, 밖으로는 외교 입지를 크게 훼손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수교 초기 공로명 당시 외무장관 방중 때는 장쩌민 주석이 접견장 밖 현관까지 나와 3분 가까이 머리를 빗으며 우리 장관을 기다렸다. 외교안보 문제를 정쟁화하는 정치권도 문제지만, 외교ㆍ안보팀이 오죽 얕보였으면 일개 중국 대사가 제1 야당 대표 앞에서 한중 관계 파탄을 협박하는 방자한 언행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외교ㆍ안보팀의 조속한 개편이 불가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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