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좀 찜찜하지 않아?” “안 간다고 하면 안돼?”일본의 도호쿠(東北)지방 미야기(宮城)현과 야마가타(山形)현에 간다고 하니 주변에선 걱정 섞인 질문이 많았다. 미야기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던 곳이다. 미야기와 야마가타에 가기 위해선 센다이 공항을 이용한다. 센다이 공항 역시 지진 당시 건물 2층까지 쓰나미로 물에 잠겼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방사능 걱정은 여전한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조금은 불안한 궁금증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스몬스터와 파우더스노의 유혹
센다이 공항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야마가타로 향했다. 센다이가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 게 지금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라고 했다. 눈 덮인 산을 보며 1시간 20분 가량 달려 도착한 야마가타현은 미야기현보다 내륙에 위치한 곳으로 일본 내에서도 스키와 수빙(樹氷·아이스몬스터)으로 유명한 곳이다.
야마가타현은 쓰나미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9,000여명에 달했던 한국인 관광객은 지진이 일어난 이듬해인 2012년부터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야마가타현은 한국 여행사에 숙박요금을 지원하고, 공항과 스키장을 잇는 버스를 운행하는 등 한국 관광객 유치에 힘써 왔다. 그 결과 지난해 야마가타현을 찾은 한국인은 6,000여명으로 회복 추세에 있다. 야마가타현 관계자는 “공기 중 방사선량을 매월 측정하는데 세계 주요 도시와 비교해도 높지 않으며, 농축산물과 수산물도 방사성물질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마가타와 미야기에 걸쳐 있는 자오산에는 수빙이라는 볼거리가 있다. 일본 내에서도 일부 한정된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으로, 크리스마스 트리에 사용하는 구상나무와 비슷한 분비나무에 얼음과 눈이 더해지며 만들어진다. 풍부한 강설량과 응고점 이하에서도 얼지 않는 과냉각 물방울 등 모든 기상조건이 갖춰질 때만 볼 수 있다. 나무가 아니라 하얀 거인처럼 보인다고 해 ‘아이스몬스터’라고도 부르는데, 야마가타의 자오 스키장과 미야기의 스미카와 스노파크에서 설상차를 타고 올라가면 감상할 수 있다.
자오 스키장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 다음 설상차를 타지만 스미카와 스노파크에서는 처음부터 설상차를 타고 올라간다. 왕복 1시간 20여분이 걸린다. 두 설상차 모두 밖을 보기 위해 창가에 앉았다면 비치된 수건으로 창을 열심히 닦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자오 스키장을 방문한 날은 기온이 높아지면서 나무에 쌓인 눈과 얼음이 녹아내려 수빙을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다음날 완벽하게 수빙이 만들어진 모습이 방송에 소개됐다고 하니 멋진 자연경관을 보기 위해서는 운도 따라야 함을 실감했다. 수빙은 12월말부터 3월초까지 감상할 수 있다.
자오 스키장과 스미카와 스노파크는 습기가 적은 가루눈, 이른바 파우더스노이기 때문에 스키와 보드를 타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일본인들이 제일 많지만 대만, 태국 등 동남아 지역에서도 온다. 스키 상급자라면 수빙을 감상하며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자오 스키장은 일본 최대 스키장으로 코스만 26개에 달한다. 스미카와 스노파크는 9개 코스에 불과하지만 길이 650m에 달하는 상급자용 ‘아토미A코스’, 이 중에서도 최대 경사 32도인 ‘아토미의 벽’이 유명하다. 스키와 보더들에게 최대 매력은 리프트를 기다리지 않고 최고의 설질에서 마음껏 스키와 보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장비와 스키복을 대여해야 할 상황이면 매장을 잘 골라야 한다. 1980년대 복고 스타일로 되돌아 갈 수도 있다.
자오 스키장 주변에는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료칸(旅館·일본식 숙소)과 호텔들이 즐비하다. 자오온천은 1900년 전인 서기 110년 발견된 강산성의 유황천으로 물 색깔 자체가 뽀얗다. 혈액순환과 변비, 당뇨에 좋고 미백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설, 회전초밥, 풋콩 디저트의 원조
미야기와 야마가타는 일본에서도 쌀과 물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에 추운 날씨까지 더해져 맛있는 술을 만드는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야마가타에 위치한 후루사와 양조장은 1836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술을 만드는 곳으로 예전에 술을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항아리, 정미기, 나무통 등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자체 제조한 다양한 술을 시음해볼 수 있고, 한국의 4분의 1가격으로 구매할 수도 있다.
미야기는 일본에서도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하다. 소의 혀(牛舌ㆍ우설) 요리인 규탄과 회전초밥, 풋콩을 으깨어 만든 디저트인 즌다가 모두 이곳에서 시작됐다. 미야기의 토산품과 음식들은 미야기 현청소재지인 센다이 시내에서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인구 100만명의 센다이는 동북지방 경제의 중심지. 느티나무가 아름답다고 해서 ‘숲 속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주말이면 주변 지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쇼핑과 먹거리를 위해 센다이를 찾는다.
미야기현에는 센다이시를 중심으로 우설 요리집이 즐비하다. 소 혀를 숙성시켜 밑간을 해서 굽는 요리로 소금, 된장 등의 소스를 찍어 먹는다. 우설 요리의 탄생은 한국의 의정부 부대찌개와 유사하다. 2차 대전 이후 미야기현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먹지 않고 남은 부위를 일본인들이 구워 먹기 시작하면서 개발한 요리인데 지금은 이곳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됐다. 센다이 공항에는 강아지를 위한 우설로 만든 간식도 판매한다.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회전초밥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미야기현 관계자는 “맛있는 쌀에 미야기현의 여러 항구에서 들여오는 신선한 생선을 가지고 만든 초밥이 유명하다”며 “회전초밥은 기다리지 않고도 저렴한 가격에 초밥을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했던 초밥장인의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센다이역 내에는 유명한 규탄 음식점과 회전초밥 음식점들이 입점해 규탄거리, 초밥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미야기의 특산품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풋콩으로 만든 떡(즌다모치)이다. 수백년전부터 미야기에서는 떡과 함께 풋콩을 으깨어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한 고물(즌다)을 즐겨 먹었고, 현재는 즌다가 들어간 케이크와 셰이크 음료 등이 나와있다. 특히 여장 스타로 유명한 방송인 마츠코 디럭스가 방송에서 즌다 셰이크를 강력 추천하면서 일본 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센다이=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여행메모]
●아시아나항공이 월·수·금·일 주 4회 센다이편을 운항 중이며 도쿄에서는 신칸센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미야기현(www.miyagi.or.kr)과 야마가타현사무소(www.yamagata.or.kr) 인터넷 페이지에서 한국어로 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나투어와 여행박사가 관련 상품을 판매 중이며 몬테소리투어도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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