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갔다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세운 엠블린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를 찾은 적이 있다. 정문을 들어서자 커다란 유리관 속에 놓인 트로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스필버그가 1994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쉰들러 리스트’로 받은 작품상 트로피였다. 트로피가 놓인 장소와 보관 방식에서 수상 당시 스필버그가 느꼈을 희열을 가늠할 수 있었다. 2012년 홍콩에서 만난 영화 ‘타이타닉’(1997)의 제작자 존 랜도는 1998년 수상한 아카데미 작품상 트로피를 공중에 던졌다 받기를 몇 번 반복했다. “집에서 종종 이렇게 논다”면서. 랜도의 기행을 보며 스필버그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죠스’(1975)와 ‘이티’(1982) 등 여러 블록버스터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스필버그는 아카데미 수상을 목말라 했다. 그가 대중성과 거리를 둔 ‘컬러 퍼플’(1987)과 ‘태양의 제국’(1989)을 연출했을 때 많은 이들이 비난 아닌 비난을 했다. 거대한 부를 이룬 사람이 명예까지 탐낸다는 질시 어린 비판이었다. 아카데미도 완강히 그의 도전을 외면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속에서 유대인을 도운 한 독일인의 양심을 그려낸 ‘쉰들러 리스트’로 스필버그는 오랜 꿈을 이뤘다. 스필버그는 이후에도 정치색 짙은 빼어난 영화들을 계속 내놓고 있다. ‘뮌헨’(2005)과 ‘워 호스’(2011), ‘링컨’(2012), ‘스파이 브릿지’(2015)는 스필버그의 영화에 대한 순정과 진지한 역사관을 웅변한다. 상업영화로 돈을 벌어 정치적, 역사적, 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들을 만들고 있으니 스필버그의 치부는 존경 받을 만하다.
지난 17일 요절시인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의 아픈 삶을 그린 ‘동주’가, 24일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담은 ‘귀향’이 각각 개봉했다. 익숙한 소재이고 알 만한 이야기를 다룬다고는 하나 정작 일제강점기에 스러진 시인과 소녀들에 대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1990년대 중반 변영주 감독이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시리즈로 위안부 피해를 고발했고, 이를 소재로 한 저예산영화들이 드물게 나왔으나 대중성과 거리를 두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인 윤동주도 마찬가지였다. 이준익 감독은 “해방 70년이 넘었어도 어찌 된 게 윤동주에 대한 TV단막극 하나 없다”고 통탄했다. 조정래 감독은 제작비를 어렵게 마련해 13년 만에 ‘귀향’을 완성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라도 냉혹한 시장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돈이 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고 재미가 없으면 대중들이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걸 보면 돈과 재미만을 탓할 수는 없을 듯하다. 2,200만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돈이 들어간 ‘쉰들러 리스트’는 전세계 극장에서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3억2,13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동주’가 23일까지 32만2,3576명을 모으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귀향’은 24일 오후 기준 예매율 28.4%(영화진흥위원회 집계)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두 영화의 선전이 반갑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충무로에 팽배한 배금주의를 되돌아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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