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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부전여전(父傳女傳)의 허상

입력
2016.02.2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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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특히 맏딸은 아버지를 많이 닮는다고 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생전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인 당찬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북 정책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의 결기와 의심만 흉내 낼 뿐 그가 남긴 역사적 교훈은 제대로 전수받지 못한 것 같다.

“한 손으로라도 손을 잡고 있으면 적이 쳐들어올지 말지 알 수 있지 않겠나.” 1971년 박정희는 갑자기 남북대화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제적인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과 대화에 나섰지만 박정희 정권은 전혀 대북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 3년 전까지 북한의 게릴라 공격에 몸살을 앓은 데다, 일방적으로 주한미군 1개 사단을 철수시킨 미국이 태연하게 적대국 ‘중공’(中共)과 손을 잡는 모습을 보면서 박정희의 안보 불안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지만, 박정희는 “김일성이 웃으면서 뒤에선 칼을 갈고 있다”고 오히려 이를 경계했다.

그 종착점이 10월 유신이다. 유신의 대의명분은 역설적이게도 통일이었다. 남한이 통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실력을 쌓아야 하고 이를 위해선 ‘영도자’ 박정희를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등 통일을 표방한 국가기관들이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뒷받침했다. 유신체제는 거의 동시에 출현한 김일성의 ‘유일(唯一) 체제’와 쌍을 이뤘다. 통일을 지상목표로 내세운 유신이 오히려 분단체제를 강화하는 역설이 연출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신체제가 산업화 경쟁에서만큼은 유일체제를 제압한 것 또한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박정희 신화’를 기반으로 정권을 잡았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통일 대박’을 주장했을 때 유신체제의 어두운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이를 환영했다. 유신체제가 내건 통일은 그야말로 허구였지만, 정치경제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북한을 압도하는 시대에 출현한 박근혜 정권은 이를 정말 실현해줄지도 모른다고 믿은 것이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와 원칙을 강조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 및 중국에 대해 독자적인 발언권을 확보해 나가는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런 기대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아버지 박정희가 남북대화의 와중에 유신체제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듯이 박근혜 대통령 또한 갑자기 냉전 시절을 방불 하는 선긋기 정치에 나섰다.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던 위안부 문제를 졸속 타결해 깜짝 놀라게 하더니,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기화로 아예 북한과의 모든 채널을 닫아버렸다. 국가의 모든 역량을 북한 혼내주기에 쏟을 태세이다. 극도로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국민 단합을 요구하는 것도 유신체제를 닮았다.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제 ‘종북’으로 몰릴 지경이다.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은 사실상 마지막 위기관리 수단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과 같다. 이제 남은 카드는 시끄러운 대북 확성기와 협박성 성명뿐이다. 이것으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국제적 공조 운운하지만 결국 한국은 북핵 문제를 빙자한 미국과 중국 간의 힘겨루기를 쳐다 보는 관객 신세가 됐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는 사드 체계 배치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미ㆍ중 대결에 가담 한데 이어 스스로 그 전쟁터가 되겠다고 나섰다. 통일 대박은커녕 전쟁의 그림자만이 어른거린다.

강대국 정치가 넘나드는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한반도 문제를 한반도화(Koreanization)하도록 해야 한다. 박정희가 민주주의와 통일에 역행하는 유신체제를 추구한 또 다른 명분은 자주(自主)였다. 자주는 김일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의 중요한 국가목표였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강대국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자주적 대응을 요구한다면 이미 때늦은 것일까.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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