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차기 총리 후보 존슨 런던 시장
EU 탈퇴 지지에 긴장감 고조
기축 통화 파운드 7년 래 최저치
엔화 강세에 기름 새 뇌관으로
한국 수출 전선에 먹구름 예상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일명 Brexitㆍ브렉시트) 시나리오가 하루하루 가능성을 높이면서 22일(현지시간) 영국 화폐인 파운드화의 가치가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기축통화 중 하나인 파운드화의 추락은 이미 중국 경기둔화, 미국 금리인상, 초저유가, 유럽계 은행의 신용불안 등으로 불붙은 글로벌 경제 위기상황에 그야말로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3일 금융권과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미 달러화 대비 파운드화 환율은 장중 한때 전 거래일(19일ㆍ1.4406달러)보다 2.4%나 급락한 1.4058달러까지 추락했다가 1.4150달러로 마감했다. 장중 최저점 기준으론 2009년 3월 이후 무려 7년 만에 최저치다.
이날 파운드화는 영국 집권 보수당의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이 "영국의 EU 탈퇴를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급락했다. 존슨 시장은 브렉시트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일이 오는 6월 23일로 확정된 직후, 공개적으로 브렉시트 지지를 선언했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당장 영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파운드화 가치가 1.15~1.20달러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벌써부터 2030년까지 영국이 국내총생산(GDPㆍ2014년 기준)의 14%인 3,130억 유로(약 427조원4,000억원)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독일 연구기관 베텔스만)이 나올 정도여서 투자자들이 파운드화 투매에 나서 추가 급락을 부를 가능성도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EU 탈퇴로 인한 혜택보다 경제적 비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영국의 신용등급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현재 영국의 신용등급은 등급체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Aa1'이다.
극도로 취약해진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브렉시트는 단지 영국 경제만의 공포가 아니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SG)은 "브렉시트로 EU GDP가 매년 최대 0.25%씩 감소할 수 있다”며 "EU로선 중국이 4%대 성장으로 주저앉는 경착륙보다 오히려 브렉시트의 충격이 2배 이상 높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이 앞장설 경우, EU에 회의적인 국가들의 연쇄 탈퇴가 이어지면서 혼란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에 이어 덴마크에서 EU 탈퇴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U회원국인 덴마크는 자국 통화인 크로네를 사용하는 등 역시 EU와 거리를 두고 있다.
영국발 악재는 지구 반대편 일본 경제에도 이미 불통을 튀기고 있다. 세계적으로 위험회피 성향이 높아진 마당에 그간 안정적인 기축통화로 인식되던 파운드화 가치마저 급락하면서 또 다른 안전자산 엔화 매수 움직임이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3일 엔ㆍ달러 환율은 브렉시트 우려 등의 영향으로 달러당 112엔대까지 수위를 낮췄다.
일본은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 도입하며 엔화 가치 하락→수출 증가→경기 부양으로 이어지는 연쇄효과를 노렸다. 하지만 세계적인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밀려 오히려 엔화 강세로 일본은행 수익성 악화 등 부작용만 우려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브렉시트로 인한 엔화 강세 요인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게 된다. 요시모토 겐 노무라증권의 요시모토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에 따른 위험요인 증가로 유럽 통화의 매도 압력이 커질수록 엔화 선호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요 교역국인 EU와 일본 경제가 브렉시트로 휘청거릴 경우, 한국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브렉시트 논란이 조기 진화되지 않는 한, 6월 투표일 전까진 글로벌 경제에 또 하나의 거대한 불확실 요인이 더해지는 셈이다. 이하연 대신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과 일본 경제의 둔화는 국내 수출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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