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4ㆍ13 총선을 불과 50일 앞둔 23일 마침내 선거구 획정 기준에 합의했다. 선거구 공백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54일이나 이어지는 진통 끝에 나온 늑장 합의다. 하지만 합의 내용은 일찌감치 예상된 수준에 머물렀다. 현행 246석의 지역구수를 253석으로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를 54석에서 47석으로 줄이기로 한 것은 한참 전에 공감대가 이뤄졌다. 시ㆍ도별 지역구수 조정 역시 언제든 합의가 가능한 기술적 문제에 불과했다. 이런 합의를 위해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선거구획정 절차 시한을 어기고 장기간 선거구 공백사태를 빚으며 시간을 허비해 왔는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결정적으로 협상을 꼬이게 한 것은 새누리당의 쟁점법안 연계 전략이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회가 시급한 민생과 안보관련 법안들은 제쳐둔 채 의원들의 밥그릇과 관련된 선거구 조정만 하면 국민들이 납득하겠느냐며 쟁점법안 선 처리 또는 동시처리를 주장해 왔다. 여기에는 쟁점법안 처리를 강하게 밀어붙인 청와대의 입김도 작용했다. 이 때문에 선거구획정이 하염없이 늦어지면서 재외선거인 명부 작성 등 중앙선관위의 선거관리 업무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졌다. 무엇보다 선거구 미확정 상태가 장기화하는 바람에 정치 신인들은 가뜩이나 불리한 경쟁 환경이 더욱 나빠지는 등 큰 불이익을 겪어야 했다. 총선 후 낙선자들이 불공정한 경쟁 조건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야는 선거구획정 협상 과정에서 함께 논의했던 정치제도 개혁 문제에서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단순 다수대표 소선구제의 큰 단점인 다량의 사표를 줄이기 위한 취지로 야당 측이 제시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도입 등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여당의 벽 앞에서 사라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농촌과 지방 의석수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례대표수를 줄이기로 하면서 보완하는 방안으로 제안됐지만 새누리당 거부로 무산됐다. 새누리당은 자당 소속인 이병석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의 중재안까지 거부했다. 세계적 추세인 선거연령 인하에도 반대한 새누리당은 목전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정치제도 개혁과 선진화를 외면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결국 실질적으로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의 도입 등 보다 합리적 방향으로 정치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다음 국회의 몫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기득권을 가진 정치집단이 당리당략에 집착하는 한 정치제도의 선진화는 요원한 일이다. 말로만 정치혁신을 외칠 게 아니라 작은 혁신이라도 실천하는 공당의 자세가 아쉽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