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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전성시대? 드라마 전멸시대!

입력
2016.02.2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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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헌집줄게 새집다오’는 최근 불고 있는 ‘집방’ 열풍의 중심에 있다. JTBC 제공
JTBC ‘헌집줄게 새집다오’는 최근 불고 있는 ‘집방’ 열풍의 중심에 있다. JTBC 제공

최근 방송의 실세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먹방’과 ‘쿡방’ ‘집방’ 등 여러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요식업계의 유명인 백종원을 등장시켜 ‘집밥’ 경쟁을 펼치더니 김준현과 문세윤 등이 “한 입만”을 외치며 차원이 다른 ‘먹방’을 선보였다. 시청자들이 두둑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삶의 여유를 만끽할 때쯤 되자 싼 값에 집을 꾸미는 인테리어 비법을 집중 소개하는 ‘집방’이 등장했다. 쉴 새 없이 진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포맷을 선보이는 예능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지난 설 연휴 동안의 지상파 방송은 예능 전성시대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었다.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지상파 3사는 종편과 케이블 채널이 가세한 설 특집 방송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예능프로그램에 집중했다. 설 연휴 동안 20여편에 달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양산하며 시청자를 유혹했다. 아이돌 그룹에 동원령을 내려 음악 관련 예능프로그램을 집중 편성하는 식으로 시청률 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예능 전성시대의 그림자는 짙고도 짙다. 명절만 되면 가족 간의 따스한 정과 이웃 사랑을 보여주던 특집 드라마가 크게 줄어들었다. 예능 전성시대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SBS ‘영주’가 방송되며 그나마 특집 드라마의 체면치레를 했다. KBS는 코미디드라마를 표방한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을 방영했는데, 방송인 김성주와 코미디언 정성호 등을 앞세워 예능국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설 특집 드라마로 분류하기엔 민망하다. MBC는 아예 특집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았다. 설 특집 드라마가 사라진 자리는 예능 프로그램이 점령했고 자극적인 화면과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한 방송관계자는 “설 특집 편성만으로 현재 방송계의 생태계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며 “방송사를 먹여 살리는 건 예능이라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예능프로그램의 득세 이유는 ‘가성비’다. 제작비가 드라마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비해 적게 드는데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높다. 방송가에 따르면 예능프로그램의 경우 토크쇼 등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프로그램은 회당 3,000~5,000만원 가량,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회당 1억원 미만의 제작비가 각각 든다. 반면 드라마는 연비 높은 대형 자동차와 같다. 지상파 방송의 평일 저녁 미니시리즈의 경우 회당 3억원 이상 제작비가 들어간다. 톱스타급 배우들의 몸값이 회당 4,000만원~1억원 선이다. 그마저도 날로 높아가고 있으니 방송사로서는 드라마 제작이 버거울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게다가 지상파 방송 드라마에는 광고조차 잘 붙지 않아 관계자들의 한숨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관계자는 “방송 예정인 지상파 드라마 중 광고가 1개만 붙었을 정도로 드라마 시장이 죽은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제작비가 무색할 정도인 드라마의 처참한 시청률은 방송사의 ‘예능 편애’를 부추기고 있다. KBS2 월화극 ‘무림학교’는 2%대, MBC 수목극 ‘한 번 더 해피엔딩’은 5%대의 시청률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따르면 황금시간대(오후 8시~10시)에 편성된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광고단가는 1,300만원대(15초 기준)로 무척 비싸다. 광고주들 입장에서는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에 굳이 비싼 광고비를 낼 필요가 없다. 몇 해 전 한 지상파 방송이 평일 미니시리즈를 없애고, 같은 시간대에 예능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방안을 모색한 이유다. 시청률이 낮아 광고가 붙지 않고 광고가 없으니 드라마 제작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MBC ‘복면가왕’의 MC 김성주는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건강 적신호가 켜졌다. MBC 제공
MBC ‘복면가왕’의 MC 김성주는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건강 적신호가 켜졌다. MBC 제공

최근에는 예능프로그램 제작비를 더 줄이기 위해 토크쇼나 인테리어쇼, 음악쇼 등 이른바 ‘스튜디오 예능’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종편과 케이블 채널뿐만 아니라 지상파도 ‘스튜디오 예능’을 경쟁적으로 편성하고 있다.

스튜디오 예능의 부상으로 진행자들의 몸값도 달라지고 있다. 리얼버라이어티 로그램을 주도했던 강호동 유재석보다 입담 좋은 전현무 김성주 김구라 등 예능전문 MC들이 더 대우 받는다. 그러나 전현무와 김성주 등이 1인당 10편이 넘는 예능프로그램을 돌려 막기식으로 진행하니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려도 엇비슷한 프로그램들이 경쟁하는 모양새다. 김성주와 전현무는 잇단 출연에 지쳐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잠정휴업을 선언했다. 늘어나는 예능프로그램의 수요에 비해 예능 MC의 공급이 미치지 못하는 예정된 결과다.

최근 안정환과 서장훈 이천수 등 일명 ‘스포테이너’가 각광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MC 기근에 시달리는 각 방송사 예능국 입장에선 지명도 있고, 말주변 좋은 스타 운동선수의 방송계 입문을 적극 환영한다. 조금만 방송에서 검증됐다 싶으면 과감하게 이들을 방송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스포테이너로도 MC 수요를 채울 수 없으니 MBC는 최근 아예 예능전문 MC 모집에 나섰다. 잇몸으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한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경남씨는 “대중의 취향도 장시간에 걸쳐보는 미니시리즈보다는 연속성 없이 짧은 시간 안에 쾌락을 주는 예능프로그램으로 바뀌고 있다”면서도 “그럴수록 저급한 정서의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예능이 많아지는 건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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