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스타는 단연 프랑스 출신 뤼카 드바르그(25)였다. 관객과 평단은 완벽한 테크닉을 선보인 1~3위 입상자가 아니라, 4위 즉 파이널리스트 가운데선 꼴지에 오른 드바르그에 환호했다. 정교한 테크닉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듯하다 돌연 악보의 지시를 무시하기도 하는 그의 개성적 연주에 한 심사위원이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지만, 각 라운드 그의 연주 끝에 객석이 뿜어낸 열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는 평이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가 기술자 부친, 간호사 모친의 이혼 후 피아노 한대 없는 조부모의 집에서 자랐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에 매료된 11세에 독학으로 피아노를 익혔으며, 17~20세는 생계를 위해 슈퍼마켓에서 일하며 문학 책을 읽는 것을 유일한 기쁨으로 여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를 향한 갈채는 경탄에 가까워졌다. 악보를 보는 법도 몰라 귀로 듣고 외워 쳤다는 그가 정식 교습을 받은 것은 단 4년이 전부였다.
그가 평창겨울음악제 무대에 오른다. 드바르그는 23일 서울 서초구 야마하홀에서 기자들과 만나 “모든 음악은 그 자체로 완벽한데 연주 과정에서 그 완벽함이 상쇄된다고 생각한다”며 “단지 테크닉을 연주하는 것은 적성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연주는 곡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음악이 지루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괴짜’라는 수식에 대해 “저 스스로 마음에 드는 것을 할 뿐”이라면서도 “실험의 끝을 향해가고 싶다”고 희망했다. “저는 그냥 제가 좋다고 믿는 방식을 추구할 뿐 동시대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음악도 듣지 않아요. 하지만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있는지는 궁금해요. 근원으로 돌아가면 결국 자신이 음악을 원하니까, 하고 싶어서 아닐까요. 그렇다면 달달 외우는 음악 보단 하고 싶은 것을 해야죠. 쇼팽 발라드, 에튀드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 연습을 하면 누구나 악보대로 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즉흥적인 음악을 선호한다는 그는 추구하는 방향성을 묻는 질문에 직접 연주자의 관점을 담은 연주와 그렇지 않은 연주를 선보이며 “음의 각 요소가 자신의 자리와 의미를 찾는 연주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를 테면 바흐처럼 많은 선택지를 주는 악보를 연주하는데도 손가락만으로 기술을 선보이는 것은 제가 하려는 게 아닙니다. 더 많은 연주자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흔히들 ‘리스트의 곡은 너무 어려워 피아니스트만 칠 수 있어’라고 하는데 곡에 담긴 선과 악, 사랑과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음만 따라간다면 리스트 역시 그냥 군가와 다를 게 없을 테죠.” 영화 문학 등 모든 예술작품을 통해 영감을 받는다는 그는 좋아하는 예술가로 셰익스피어,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샤토브리앙, 마이클 패스벤더 등을 꼽았다.
평창을 찾는 그는 26일에는 스카를라티 ‘소나타’와 라벨 ‘밤의 가스파르’를 연주한다. 첼리스트 안드레이 이오니처와 함께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이오니처, 클라라 주미 강과 함께하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트리오도 선보인다. 27일에는 최수열 지휘 코리안심포니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그는 “스카를라티는 즉흥적 라벨은 보다 전형적으로 매우 극단적인 두 곡을 연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목표를 “피아니스트가 되기보단 저 자신이 되는 것, 자유로워 지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콩쿠르 출전 계획을 묻자 “없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참여하기 싫다기 보다는 다른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갇혀서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요. 굳이 행복해지기 위해 대상을 탈 필요도 없고요. 다른 분들이 아닌 내가 이해하는 음악을 하고 싶은 것, 목표는 그것뿐입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김다은 인턴기자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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