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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무너진 금도(襟度), 사라진 정체성

입력
2016.02.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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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당은 보수와 진보 양측의 표심을 잡으려는 포괄 정당(catch all party)을 지향한다. 이는 좌와 우의 양 극단을 배제함으로써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정책의 폭을 넓히고 중도층으로의 외연확장을 위한 이념적 유연성의 증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정당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미가 있다. 햇볕정책은 북한에 대한 대표적 포용정책으로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의 근간이었다. 그런데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국민의당 이상돈 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동영 전 의원의 동거는 혼란스럽다. 거의 같은 시기의 영입을 ‘합리적 보수’와 ‘개혁적 진보’의 중도지향이라고 설명하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궁색해 보인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비판적이던 더불어민주당이 한미FTA 협상의 주역인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영입한 것도 형용모순이긴 마찬가지다. 평소 새누리당에게 정책의 변화를 설명하지 않는다고 날을 세운 더민주당도 이에 합당한 설명과 국민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새누리당의 친박과 비박의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총선 이후의 당내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한 전형적 권력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들, 이른바 ‘진박’인사들을 20대 원내에 진입시키려는 세력과 이를 저지함으로써 미래권력을 차지하려는 측과의 한 판 승부가 새누리당의 계파갈등의 본질이다. 우리나라의 국익과 안보를 위한 핵무장의 타당성 여부,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의 간극 해소에 관한 지향의 차이 등 국익과 민생을 둘러싸고 형성된 계파 갈등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재의 새누리당 내의 각축은 총선 이후의 당권과 대권구도의 향배 등의 권력지형을 배제하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당내주도권 다툼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해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진박’이 판가름되고 공천에 영향을 끼치는 현재의 새누리당의 구도는 정치적 퇴행을 불러온다. 이러한 구태가, 집권 후반기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친박근혜 성향의 인물이 국회에 대거 입성하여 국정과제를 위한 입법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논리만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

정치에는 최소한의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권력정치와 현실정치는 어차피 명분과 실리의 조화이기 때문이다. 조선조 현종 때의 예송 논쟁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무익해 보이지만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유교의 예학과 성리학에 관한 치열한 이론 논쟁이 권력투쟁의 명분이었다. 예송 논쟁은 적장자 계승과 관련한 관점과 이념적 차이라는 붕당의 노선 대립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에는 금도(襟度)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 남북한 관계의 관리에 적절한 정책인지의 여부와 경제정책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 등에 대한 논쟁이 노선투쟁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념에 따른 분화가 세 대결의 모멘텀이 된다면 갈등은 순기능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새누리당에서 일부 친박 인사들의 ‘진박 감별’은 정치의 희화화를 넘는 정치 포기에 다름 아니다.

선거를 49일 앞둔 현재 정치권 대립 축의 양상은 복잡다기하다. 흔히 적대적 공존을 여야 거대정당의 담합 체제에서 찾는 게 일반론이지만, 여야간, 여당내, 야권내의 ‘불안한 동거’가 일상화되고 있다. 정치권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총체적 혼돈을 보이고 있는 양상이다. 가치를 설정하지 않고, 이기적 목적만을 지향하는 집단들의 동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언젠간 갈라설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공자(孔子)는 ‘군자 화이부동, 소인 동이불화(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라고 했다. 차라리 총선 이후에 여야 정당들이 이념을 중심으로 ‘헤쳐모여’를 이뤄낸다면 정당체제의 재정립을 통한 정당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선거를 목전에 두고 정당의 이합집산을 지켜봐야 하는가. 쉽지 않은 기대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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