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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물 안 개구리 왈

입력
2016.02.2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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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만 하다 보면 어느새 바깥과 단절된다.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 세상 물정을 잘 못 읽어낼 때도 솔직히 많다. 터무니없는 보수인데도 의리 때문에 할 수 있고 감당하기 곤란한 모욕도 잘 견딘다. 연극인들은 그렇게 따로 떨어져 사는 근육이 발달한다. 남들 눈에 어색한 비상식이 통하고, 익숙한 상식이 전혀 안 통하기도 다반사. 직업을 따라서 그렇게 길이 나는 것일까. 하지만 무대를 통하여 세상을 보는 지혜와 통찰력도 얻는다. 결국은 사람의 역사구나.

그래서다. 우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종종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어떻게 저런 일이 터무니없이 일어날까. 그럴 때는, 이러고 연극만하고 편케 살아도 되는 건가, 싶다. 위안부 문제는 다시 말하지 않기로 했네, 주기로 한 어린이집 예산을 없앴네, 북한이 우주에 미사일을 쏘았네, 그 폭탄을 잡을 미사일을 또 배치하네, 개성공단은 없어졌네, 하는 식이다. 충분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겠으나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리액션이 무난하면 좋을 텐데 어쩔 때는 나 몰라라 끊기고, 어쩔 때는 너무 느리고, 어쩔 때는 그야말로 기민함이 경이로워서 가늠하기가 어렵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자인을 했으니 어찌 시비를 따질 깜냥이랴. 그래도.

그래도 할 말이 입안에서 맴돈다. 우선은 빠른 속도에 대하여. 연극은 어떤 캐릭터가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하는데 공을 많이 들인다.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인과관계를 차근차근 따진다. 연극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단지 10%, 빙산의 일각이라서다. 하지만 그 액면의 이야기로써 수면 밑의 90%를 마저 읽어내게 유추가 가능해야만 한다. 충분히 연구하고 오래 상의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억지스럽게 짜 맞춘 티가 나서 들킨다. 그렇게 되면 관객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냈구먼, 하고 여지없이 돌아선다. 그래서 여러 경우를 따져보느라 속단을 유보한다. 요즘의 우물 밖은? 결단이 좀 급해 보인다. 숙고가 필요해 보이는 사안인데 금방 결단을 내리는 듯하다. 애써 북한에 만들었던 우리 공단의 폐쇄 결정이 내 눈에는 특히 그러하다.

우리가 준 선의의 인건비가 엄한 데로 흘러 들어가서 도리어 위협을 받고 있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니 납득은 가지만. 어찌되었든 사람이 어울려서 살았던 곳 아닌가. 그러면 서로 이별을 준비하고 다음 달의 계획도 세우고 할 그런 여력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결국 사람이 살던 직장 아니었나. 5만명이 넘게 살았다면 누구는 서로 인간적으로 깊은 정을 나누었을 테고 누구는 거기서 번 돈으로 학비를 마련하고 꼬박꼬박 모으며 몇 년 후에 시집 장가를 갈 계산도 했을 것이다. 남북이 서로 교감을 했을 인연들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고. 철수조치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더라도 그 시기만큼은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국가가 국익과 안보를 위해 하는 결정인데 그 누가 반대하랴. 그렇더라도 그 안에서 생계를 꾸리던 선량한 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릴 시간은 조금 더 벌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나흘은 아무래도 너무 밭았다.

다른 하나, 불안감이다. 연극도 하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아 낙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조바심 나기가 짝이 없다. 그래도 늘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다잡는다. 파국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안 그러면 사는 보람이 없어진다. 어떻게든 되게 만든다. 불안하게 보지 않으면 불안해지지 않는다. 좋게 보려는 의지가 있어야 더 나은 판단이 나온다. 긴장감이 감도는 속단을 유보하고 여럿의 목소리를 들어 깊이 상의하고 내린 차분한 용단이 좋은 결과를 맺을 때가 의외로 더 많다. 근 얼마 동안 전쟁이라도 난 듯 돌아가니 정신이 다 없었다. 조금 더 격조가 있게, 여여하게. 천하의 부드러움이 천하의 강함을 이긴다는 노자의 말씀, 좋지 않은가. 한 호흡만 더디 가면 훨씬 태평해질 우리나라다.

고선웅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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