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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편지 ‘처음처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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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편지 ‘처음처럼’ 나왔다

입력
2016.02.2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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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영복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 신영복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15일 별세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처음처럼’ 개정판이 22일 돌베개에서 출간됐다. 출판사는 2007년 서화에세이 형식으로 나왔던 책을 다시 펴내면서 부제를 ‘신영복의 언약’이라 붙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책을 다시 내겠다는 약속은 지켰노라는 약간의 자부심이 읽힌다.

재출간이긴 하지만 내용은 많이 바뀌었다. 출판사는 90편 가까운 새로운 원고를 추가해 4부 215편 형식으로 만들었다. 첫 글 ‘처음처럼’과 마지막 글 ‘석과불식’만 그대로 두고 구성도 변경했다. 그대로 둔 글 역시 일부 고치거나 그림을 바꾸는 방식 등으로 가다듬었다.

내용을 이렇게 많이 바꾼 것은 똑같은 책을 그대로 낼 순 없다는 신 교수의 고집 때문이었다. 고인은 여는 글 ‘수많은 처음’에다 감옥에서 쓴 글은 검열 등을 의식했고, 신문에 쓴 글은 공적 공간이라 충분치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러한 글들이란 나로서는 ‘다시 쓰고 싶은 편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차마 쓰지 못하고 행간에 묻어둔 이야기가 더 많은 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썼다.

서화에세이 방식은 고인이 감옥에서 편지를 쓰다 조카들을 위해 엽서 귀퉁이에다 그림을 조그맣게 그리면서 시작됐다. 말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면 그림은 구체적이고 정감 넘치고 편안하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이후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같은 책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새 책 1부 ‘꿈보다 깸이 먼저입니다’에는 삶에 대한 사색을 모았다. “각성, 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입니다”라고 해둔 ‘성찰’편은 1부의 주제의식을 잘 드러낸다. 2부 ‘생각하는 나무가 말했습니다’에는 소소한 생활 속에서 느닷없이 깨닫게 되는 진리를 다뤘다. ‘빈손’편에서 고인은 “물건을 갖고 있는 손은 손이 아닙니다. 더구나 일손은 아닙니다. 갖고 있는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손이 자유로워집니다. 빈손이 일손입니다. 그리고 돕는 손입니다”라고 읊었다.

4부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는 고인의 지속적으로 내걸었던 철학이었던 관계론에 집중하면서 연대의 가치, 공동체에 대한 꿈,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생각 등을 담았다. 거창한 이론보다 자그마한 실천을 강조하는 글이 많다. ‘종이비행기’에서 고인은 생활 속에서 실천한 사상만큼의 사상만이 자기의 사상이라 강조하면서 “하물며 지붕에서 날리는 종이비행기가 그의 사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라고 따끔하게 질책도 했다.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3부 ‘공부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부분. 고인은 언제 어디서나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강조해왔다. 고인은 20여년에 걸친 엄혹한 수감생활조차도 ‘나의 대학시절’이라 불렀다. 이 감옥에서의 깨달음을 많은 글로 남겼는데 이 이야기들을 한데 묶었다. 이 얘기들은 초판에 실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인디언은 말을 멈추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영혼이 따라 오기 기다립니다. 공부는 영혼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인디언의 기다림), “공부는 망치로 합니다. 갇혀 있는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것입니다”(망치)라는 짧은 문구 외에도 감옥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긴 글들이 많다.

이 원고가 출판사 손으로 넘어온 것은 지난해 11월. 고인은 건강이 나빠지면서 더 이상 집필하거나 책의 구성을 논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대신 고인은 마지막까지 조금씩 다듬었다. 이경아 돌베개 인문고전팀장은 “예전엔 원고가 나온 이후 계속 얘기를 나누며 전체 흐름을 고쳤는데 이번엔 원고가 나왔을 때 이미 선생님이 위중한 상태라 그럴 수 없었다”면서 “평소 선생님이 세상 모든 것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을 강조하셨고 정년 퇴임 뒤 외부강연 주제도 늘 ‘공부란 무엇인가’였던 만큼 공부 부분을 따로 분리해 구성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처음처럼’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비결을 이렇게 분석했다. “아마 역경을 견디는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경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길 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수많은 처음 가운데 하나를 세상에 뿌렸던 고인은 우리에게도 처음을 만들어 뿌리라고 격려하고 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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