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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메이드 인 코리아가 불탄다면

입력
2016.02.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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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과 도요타 대리점에 돌멩이가 날아들어 유리창이 박살 났다. 파나소닉 공장엔 불이 났고 생산라인이 파괴됐다. 자스코의 슈퍼마켓은 습격을 당해 창고에 보관돼 있던 340억원 어치 상품 중 절반 이상이 약탈되거나 파손됐다. 수 차례 털린 일식 체인점 요시노야는 중국인의 애국심을 강조하는 광고와 오성홍기로 간판을 가린 채 영업해야 했다.’

2012년 9월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본 정부가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하자 성난 중국인들이 대규모 반일시위를 벌이며, 일본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중국 정부가 시위에 관여한 증거는 없었으나 당시 일본 언론들은 ‘관제 시위’라 맹비난했다. 1989년 텐안먼 사태 이후 사람들이 모이기만 해도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중국 정부가 수만 명의 단체행동을 이례적으로 묵인하고 방치했으니 충분히 혐의를 둘 만 했다.

중국인들의 과격한 불매 운동 속에 일본은 그 해 중국과의 교역에서 3조5,213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0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인데, 당시 사상 최대였던 일본 무역 적자의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글로벌 생산시스템이 보편화 된 시대에 기업과 상품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지만 역사ㆍ외교 문제에 뿔이 난 군중들에게 그런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는가.

그때 우리 기업들은 중일 갈등의 덕을 좀 봤다. 중국인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던 2012년10월 대중 수출액(124억 달러)은 사상 처음으로 월간 120억 달러를 돌파하게 됐다.

요즘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중 관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2012년의 중국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차들을 뒤집고 불태운 시위대들이 마지막 분풀이를 위해 향한 곳은 일본 식당이었다. 만일 상황이 바뀌어 우리 자동차, 우리 스마트폰이 시위대의 타깃이 된다면 정말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당시 중국 주재원으로 있던 한 기업 직원의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무역 보복과 관련한 중국의 구체적 움직임은 없다. 2000년 마늘 파동 때처럼 중국이 한국의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중단하는 식의 드러나는 보복을 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그런데도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한국 상품의 사소한 결함 문제를 집중 부각 시켜 큰 부실이 있는 것처럼 지적하면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지난주 새누리당과 정부의 경제상황점검 태스크포스 회의 때 나온 우려다. 중국 정부가 직접 움직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비관세 장벽을 통해 보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을 감수하면서 미국과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화한 것은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또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정부가 몰랐을 리 없으니, 불가피한 선택에 따른 경제적 리스크와 대책 또한 충분히 논의되고 준비될 것으로 믿는다. 다만 꺼림칙한 것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를 내릴 때의 정부 모습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입주기업들과 충분한 사전 협의조차 하지 않았고, 일이 커진 뒤에 내놓은 대책이라곤 낮은 이율의 대출과 남북경제협력 보험금 즉시 지급 정도였다.

‘촉이 빠른’ 증권가에선 이미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과 그에 따른 리스크를 분석하느라 바쁜데, 과연 정부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을까. 왠지 익숙한 장면이 떠오르는데, 설마 아닐 것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경제활성화 법안과 노동개혁 법안을 통과시켜달라’는 앵무새같은 호소. 법만 통과되면 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믿어 국회 탓만 할 정도로 정부가 무능하진 않을 것이다. 모든 게 그저 쓸데없는 우려이기를 바랄 뿐이다.

한준규 산업부 차장대우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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