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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즉흥연주의 밤

입력
2016.02.2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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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친구가 술집을 한다. 약속 없이 불쑥 찾는 편이다. 피차 별 대화는 없다. 음악을 들으며 한잔하다 보면 밤늦게 즉흥연주가 시작되곤 한다. 베이스가 먼저 들어가기도, 기타가 첫 운을 떼기도 한다. 마이크를 붙들고 떠오르는 멜로디를 선창하는 경우도 있다. 기타를 치던 이가 드럼 스틱을 쥐기도 하고, 구경만 하던 이가 기타를 잡기도 한다. 모든 게 제멋대로지만, 연주가 진행될수록 뒤죽박죽이던 곡조와 리듬이 일정한 형식을 찾는다. 뭐가 나올지 모른다. 자기 파트에만 집중하다가도 점차적으로 구심을 갖게 되는 앙상블 속에서 모종의 전체성을 의식하게 된다. 중구난방 불협하던 소리가 점점 덩어리로 엉겨 붙으며 균형감과 긴장을 이끌어낸다. 자신의 소리에만 집중하던 귀가 상대의 소리를 향해 열린다. 처음 만난 사람도 있건만 그 순간만큼은 불화와 이질감마저 전체 소리의 한 요소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느낌. 마이크를 내려놓고 술을 들이켜며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는다. 상대의 소리를 제대로 받아 돌려줄 때 이편의 소리도 더 정확히 울린다. 각자의 소리만 핏대 높여 질러대면 결국 굉음만 진동할 뿐. 혼자 오래도록 소리 질러 댄 건 아닌가 돌이켜본다. 내 목보다 그걸 듣는 귀가 더 아팠을지 모른다. 소리 내는 입의 적나라함보다 듣는 귀의 은밀한 솔깃함이 더 좋은 소릴 만들어내는 법. 음악에게 한 수 배운 밤이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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