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한 고등학교 야구 유망주였던 김모(36)씨는 제주도의 한 대학에 진학했다가 프로에 진출하지 못했다. 수도권 유명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포기하고 중ㆍ고등학교 등에서 야구를 가르치다 2012년 12월쯤 고향인 수원에 야구용품점을 차렸다. 지역 선후배들과의 오랜 친분으로 수원시 야구연합회에 소속된 야구동호회 등에 글러브와 배트 등을 독점 납품하며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프로선수라는 꿈을 접고 좌절하던 그에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된 셈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삶도 오래 가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해 3월쯤 우연히 접한 인터넷 도박사이트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다리, 스포츠 토토 등 불법 도박을 하며 지난달까지 10개월여 만에 무려 1억 원이 넘는 돈을 탕진했다. 모두 야구용품을 납품하던 회원들이 믿고 건넸던 물건 값이었지만, 도박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사업은 망가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용품을 받지 못한 회원들의 빚 독촉이 시작됐다. 그는 결국 지난달 말 야구매장을 정리하고 휴대전화마저 정지한 뒤 서울 광진구에 있는 한 병원에 스스로 입원했다. 도박중독 치료를 핑계로 사실상 병원에 ‘은신’한 것이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김씨의 도피는 그러나 불과 10여일 만에 막을 내렸다. ‘야반도주’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지난 1일부터 피해자들의 신고가 이어졌고 수사에 들어간 경찰이 지난 15일 오후 5시30분쯤 병원을 급습, 그를 검거했다.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야구계 선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경찰은 장모(51)씨 등 야구협회 회원 11명에게 용품을 납품하겠다고 속여 1억8,000만원을 가로챈 혐의(상습사기)로 김씨를 22일 구속했다.
조사결과 김씨는 불법 도박에 빠진 이후 적게는 회당 몇 만원부터 많게는 1,000만원까지 배팅해 돈을 모두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김씨를 믿었던 피해자들은 용품 계약을 맺으면서 돈을 전액 지불했다가 뜯겼다”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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