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2월 22일
1819년 2월 22일 미국이 플로리다 주를 스페인에게서 ‘매입’했다. 1만여 년 전부터 다양한 원주민들이 살았고, 16세기 초 스페인 탐험가가 상륙해 ‘꽃의 축제’라는 의미로 ‘라 플로리다’라 이름 붙인 땅. 16~18세기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이 번갈아 주인 행세를 하면서 서로 전쟁을 일삼던 때에도 원주민들은 이리저리 휩쓸리긴 했지만 땅에서 아주 내쫓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면화농장과 눌러앉아 살 땅이 필요했던 미국은 달랐다.
미국 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1922~2010)은 ‘미국 민중사’에서 플로리다 편입의 역사를 이렇게 기록했다. “학교 교실 지도에는 ‘1819년 플로리다 매입’이라고 고상하게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스페인이 땅을 팔도록 ‘설득’당할 때까지, 앤드루 잭슨이 플로리다 국경 전역에 걸쳐 세미놀(Seminole)족 마을을 불태우고 스페인 항구를 탈취한 군사작전의 결과였다. 잭슨은 자기 말에 따르면 ‘자기 방어라는 불변의 법칙’에 따라 행동했다.” 그 ‘잭슨’이 플로리다 준주의 첫 지사이자 미국의 제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1767~1845)이다.
잭슨은 토지 투기업자이자 노예무역상이었고, 진에 따르면 “초기 미국 역사상 인디언의 가장 호전적인 적”이었다. 잭슨의 군대는 조지아와 앨라배마 미시시피의 크리크족을 분열시켜 일부는 포섭하고, ‘붉은 막대기들 Red Sticks’라 불린 저항자들은 학살하며 땅을 넓혀갔다. 그는 인디언이든 백인이든 붉은 막대기들의 땅과 재산을 빼앗으면 그 재산은 빼앗은 자의 소유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그 전술은 인디언 전통의 토지 공동소유제를 파괴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디언과의 약속이나 부족 토지 분할 협정은 무시되기 일쑤였고, 크리크족은 새 땅에 정착하기 무섭게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더 변방으로 쫓겨나야 했다. 그렇게 떠밀려 간 마지막 땅이 멕시코 만 끄트머리 스페인령 플로리다였다. 1818년, 잭슨은 플로리다를 탈주 노예와 붉은 막대기들의 은신처로 지목해 대대적인 소탕전(세미놀전쟁)을 벌였다. 당시 스페인은 이빨 빠진 호랑이여서 전쟁은 싱겁게 끝이 났고, 잭슨은 텍사스 지배권을 인정해주는 조건으로 플로리다를 넘기게 했다. 남은 세미놀 족에게 허락된 땅은 플로리다의 질척한 습지였다.
19, 20세기 미국인들은 대규모 면화ㆍ오렌지ㆍ사탕수수 농장과 호화 리조트, 디즈니 월드와 항공우주 산업 단지를 조성했다. “선샤인 스테이트” 플로리다는 노년 퇴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지 가운데 한 곳으로 각광 받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