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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성 없으면 우량 사업도 가차없이 버리는 글로벌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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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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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은 지난해 140년 가까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변신을 꾀했다. 더 이상 세계적인 가전업체도, 영화와 금융을 아우르는 ‘문어발 기업’도 아니다. 전혀 다른 ‘스마트 에너지’ 회사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유는 단 하나, 생존을 위해서다.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앞다퉈 과감한 사업재편에 나서고 있다. 회사의 출발점인 모태사업이나 현재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주력사업이어도 장래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정리한다. 당장은 아깝지만 미래를 위해 사업구조를 급격히 바꾸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게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이다.

GE와 듀폰, 사업재편의 상징

GE는 회사의 상징 사업이면서 현금 확보원이었던 가전부문을 2014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GE의 가전사업은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성장세였다. 그러나 GE는 경쟁사들의 급성장으로 호실적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봤다. 이런 관점에서 방송과 영화 분야는 2013년 미리 정리했고 한때 주력이었던 금융사업도 지난해 수백억 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대신 GE가 선택한 미래사업은 소프트웨어와 에너지 산업의 융합이다. 2013년 GE는 세계 발전설비의 25%를 공급하는 프랑스 전력회사 알스톰을 106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를 토대로 GE는 미국 최초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만드는 등 미래형 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프리 이멜트 GE CEO.
제프리 이멜트 GE CEO.

미국의 대표적 화학기업인 듀폰도 200여년 동안 대표 사업이었던 섬유와 화학 사업을 2014년까지 차례로 정리했고 종자ㆍ농약ㆍ효소 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농업생명공학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거대 화학기업 다우케미칼과 통합을 발표했다. 합병 기업 다우듀폰은 농업과 재료과학, 특수제품 중심의 3개사로 분리될 예정이다.

회사의 심장과 같은 주력사업을 미련없이 털어낸 GE와 듀폰의 대담한 사업재편은 미래 성장동력을 남들보다 앞서 찾기 위한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수익성이 떨어질 것을 예견하고 미리 기업의 체질을 바꾼 것이다.

PC와 전산장비업체였던 미국 IBM은 중국 레노버(2014년)에 PC사업을 매각했고 세계 1위 휴대폰업체였던 핀란드의 노키아는 스마트폰 등장으로 위기를 맞으면서 마이크로소프트(2013년)에 휴대폰 사업을 매각했다. 이후 IBM은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 노키아는 사물인터넷과 네트워크사업 등에 미래를 걸고 있다. 독일 지멘스도 통신과 휴대폰, 가전, 반도체, 원자력 등으로 다각화했던 사업을 1990년대 후반부터 산업솔루션, 에너지, 헬스케어, 도시인프라 등 4대 핵심 분야로 집중시켰다. 지멘스는 4대사업의 매출 비중이 90%를 넘고 있다.

버지니아 로메티 IBM CEO.
버지니아 로메티 IBM CEO.

사업재편으로 기업 수명 늘리는 글로벌 기업들

문제는 사업재편을 바라보는 시각이 국내와 외국이 다르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사업재편을 최후의 구조조정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농후하다. 반면 외국 기업들은 10여년 전부터 사업재편을 기업수명을 늘리는 생존의 디딤돌로 활용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네덜란드 필립스와 일본 히타치다. 필립스는 반도체와 전자부품 수익성이 떨어지자 2000년대 사업을 아예 철수했다. 대신 강점이 있던 조명과 의료장비 사업을 확대해 해당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히타치는 반도체와 TV 사업을 매각한 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으로 눈을 돌려 2010년 ‘소셜 이노베이션’이라는 비전을 내걸고 건설기계와 철도, 전력, 정보시스템 등의 현지 기반사업을 육성했다. 히타치는 ‘레드 오션’을 탈출해 ‘블루 오션’을 개척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나카니시 히로아키 히타치 CEO.
나카니시 히로아키 히타치 CEO.

일본 소니도 2014년부터 PC와 TV 사업을 각각 매각하거나 분사한 뒤 모바일 기기와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파나소닉도 같은 시기 실적이 부진한 TV와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했고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주력하고 있다.

인수합병도 신사업 수단

혁신의 상징인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은 사업 재편 수단으로 인수 합병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터넷 기업 구글은 무인자동차 개발에 나섰고 로봇카와 드론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창의적 기술을 보유한 소규모 기업들을 잇따라 인수하며 사업이 커지자 여러 사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난해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했다. 페이스북은 2014년 오큘러스를 인수하며 올해 유망 사업으로 떠오르는 가상현실(VR) 사업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애플도 지난해 증강현실(AR) 기업 메타이오를 비롯해 VR과 AR기업 3개사를 인수하며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래리 페이지 알파벳 CEO.
래리 페이지 알파벳 CEO.

이처럼 사업재편에 적극적인 글로벌 기업들의 공통점은 낯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우리 기업들은 사업 재편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는 곧 대외 경쟁력을 떨어뜨려 기업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글로벌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재편한 2000~2014년 사이 우리 기업은 기존 산업을 유지하는데 몰두했다”며 “국내 산업 전반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경영 전략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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