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분열에 대법원 판결로 충격
MB정부 노동법 개정 후 더 위축
양노총 미가맹 노조 23%로 급증
"대기업 정규직 위주라는 비판 수용
비정규직 약자 끌어안아야" 지적
"투쟁 일변도 노선 지양" 목소리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착돼 오던 산업별 노동조합 체제가 위기에 봉착했다. 산별 노조 산하 지부가 스스로 기업별 노조로 조직형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지부ㆍ지회의 탈퇴가 이어져 산별 노조의 영향력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판결 이전에도 산별 노조의 구심력이 약화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 사실이라, 앞으로 산별 노조의 대응에 따라 노동운동의 미래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보수 정권의 노조 흔들기 탓이든 노조 내부의 결속력 이완 탓이든, 위축되고 있는 산별 노조가 결속력을 회복하려면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 역할로 거듭나기 위한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세 위축되고 있는 산별 노조
국내 양대 노조 총연맹은 산별 노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2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민주노총은 총 조합원 63만여명의 81%에 달하는 51만여명이 산별 노조 소속이다.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주력이 모두 산별 노조다. 한국노총은 기업별 노조 조합원이 45만여명으로 전체 조합원 84만여명의 절반을 넘고 나머지가 산별 노조 조합원이다.
하지만 규모는 하락세다. 전국교직원노조 조합원 수는 2003년 9만3,000여명으로 가장 많았다가 지금은 5만3,000여명으로 뚝 떨어졌다. 법외노조 논란 등 악재가 있었지만 2013년 고용부가 법외노조로 통보하기 전부터 현장 조합원들의 신뢰가 약화됐다. 민주노총 최대 조직인 금속노조는 2009년 9월 경영난으로 노사갈등을 겪던 쌍용자동차가 금속노조를 탈퇴한 이후 자동차 조선 철강 등에서 분열 움직임이 잇따라 몸살을 앓고 있다.
산별 노조의 운영 원칙도 자리를 못 잡고 있다. 같은 산업에선 단일 노조로 공동 대응한다는 게 1995년 민주노총 출범 당시 목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업장 단위 노조와 다를 게 없어졌다. 현재 민주노총 소속 16개 연맹 중 공공연맹과 금속노조엔 다른 업종 노조들이 섞여 있다. 하부 조직 활동이 완전히 산별 규약에 따라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국회 통과된 노동관계법 개정도 산별 체제 약화의 한 요인이 됐다. 조합원 수에 따라 정해진 숫자의 노조 전임자만 두도록 한 입법 이후 상급 단체에 상근자를 파견할 때 조합비로 임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게 됐고, 커진 재정 부담이 산별 조직 약화로 이어졌다. 인적ㆍ물적 자원이 산별 노조에 모이지 못하면서 영향력 역시 흩어져 버린 셈이다.
그러다 보니 10년 새 미가맹 노조가 약진했다. 2005년 각각 우리나라 전체 조합원의 51%, 42%였던 한국노총, 민주노총 조합원 비율이 2014년 44%, 33%로 떨어지는 동안 16%에 불과했던 미가맹 노조 비율이 23%로 급증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현장 조합원 마음을 잡지 못한 상급단체 탓에 국내 미가맹 노조 비율이 해외보다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노동 약자 대변 조직으로 거듭나야
앞으로 산별 노조는 대법 판결의 여파로 이탈할 수 있는 산하 지부ㆍ지회 단속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손쉽게 탈퇴할 수 없도록 탈퇴 절차 등이 포함된 내부 규약을 정비하고, 산하 지부ㆍ지회가 탈퇴를 결정하면 대법원 판례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놓고 법적 대응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19일 판결에서 지부ㆍ지회라도 독자적 단체교섭 능력이 있는 등 독립성이 인정된다면 스스로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고 판시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세적으로 이탈을 막는 것보다 이번 기회에 산별 노조의 운영을 튼실하게 해서 지지세력을 모으는 것이 더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제언도 있다. 대표적으로 산별 노조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만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수용해 업종 내 비정규직 노동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직되지 않은 약자들과 연대해 (정규직 여부나 기업 규모를 떠나) 업종 전반의 임금을 균등화하는 게 산별 노조의 본령”이라며 “산별 노조가 업종 전체의 임금 인상률을 협상하는 스웨덴 등의 노조 운동을 전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 투쟁 일변도의 노선을 지양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동원 학장은 “조합원이라면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생계 문제, 즉 임금이나 근로 시간, 고용 안정성 등에 관심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탈퇴 도미노를 막으려면 노총 지도부가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 대법원이 기업 노조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판결한 발레오전장 노조의 경우 노조파괴를 일삼은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시나리오에 따라 사측이 기업 노조로 변경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는 했으나, 2010년 파업을 거친 뒤 강경 투쟁에 지친 조합원 601명 중 550명 참석, 536명 지지(97.5%)로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다 냉정하게 노조 스스로 앞길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전체 근로자의 업종ㆍ직종별 대표 조직체로 거듭날 것인지, 사업장 담장 밖을 넘지 않는 근로자 이익을 추구할 것인지를 노동운동 세력이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