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원래 남한이 앞장서 적극 추진했던 유엔 동시가입을 분단을 고착화 한다는 이유로 극구 반대했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91년 4월19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선(한반도)의 분열을 영구화하려는 목적”이라고 단호히 반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 달 뒤 돌연“남한 단독 유엔 가입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면서 전격적으로 남북 유엔 동시 가입 쪽으로 방침을 선회했다.
▦ 직접적인 배경은 중국의 태도 변화였다. 이 해 5월 3일 리펑 중국 총리가 북한을 방문, 한국의 유엔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중국 공산당 정치국 결정을 김 주석에게 통보했다. 일단 남한이 유엔 회원국이 되고 나면 북한은 가입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였다. 유엔 무대에서 늘 북한 편에 섰던 구소련은 남한과 수교 이후 남북 동시가입 지지로 선회한 상황이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북한은 남한과 함께 유엔 회원국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 1991년 9월17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 동시가입안이 159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뉴욕 유엔본부 앞 광장에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게양되기 시작했다. 1948년 남과 북에서 차례로 단독 정부가 수립된 지 43년 만에 남과 북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남북 유엔 동시가입은 동서 냉전 종식, 동구사회주의권 몰락 등 국제정세 변화가 바탕이 됐지만 1988년 7ㆍ7선언으로 본격화한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의 결실이기도 했다. 남북 평화공존 꿈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 유엔주재 한국 대표부가 15일(현지시간) 유엔본부 공개회의에서 북한의 회원국 자격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 10년 동안 4차례 핵실험과 6개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함으로써 유엔헌장에 담긴 의무이행 서약을 어겼다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국회연설을 통해 전면적인 대북 압박을 천명한 이후 다각도로 취해지고 있는 정부의 대북 공세의 일환이다. 남북이 같이 했던 평화공존, 평화통일의 꿈을 깨트려버리고 다시 적대와 대결의 냉전시절로 뒷걸음질 치는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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