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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부리 겨눈 분단 상황서도 각자에겐 소중한 삶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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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부리 겨눈 분단 상황서도 각자에겐 소중한 삶이 있죠”

입력
2016.02.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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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불 합작연극 ‘빛의 제국’ 문소리 지현준

국립극단ㆍ오를레앙국립연극센터

한불 수교 130주년 맞아 공동 제작

佛 연출가 지휘로 내달 국내 초연

지현준은 영화 2편 캐스팅도 거절

문소리는 연출가와의 가교 역할로

현대사회 개인의 고독 연기에 올인

한불 합작 연극 '빛의 제국' 주인공을 맡은 문소리(왼쪽)와 지현준. 매일 달라지는 대본과 동선 때문에 연습하기 버겁지 않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기본을 놓치지 않으면 어떤 연출 방식도 같이 갈 수 있다”며 “얻는 게 많아 과수원에서 가방이 터져라 과일 따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한불 합작 연극 '빛의 제국' 주인공을 맡은 문소리(왼쪽)와 지현준. 매일 달라지는 대본과 동선 때문에 연습하기 버겁지 않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기본을 놓치지 않으면 어떤 연출 방식도 같이 갈 수 있다”며 “얻는 게 많아 과수원에서 가방이 터져라 과일 따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남파 후 20년간 평범한 서울 시민으로 살아온 끈 떨어진 간첩 김기영. 어느날 아침 “모든 것을 버리고 24시간 내에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 서울에서의 인생을 통째로 청산해야 한다.’

김영하 장편소설 ‘빛의 제국’(2006)이 연극무대로 옮겨진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국립극단과 프랑스 오를레앙국립연극센터가 공동 제작하는 이 작품은 프랑스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이 연출을 맡고 한국 배우와 제작진으로 3월 한국에서, 5월 프랑스에서 각각 초연된다. ‘정부 기념공연’쯤이겠지 하던 찰나, 대학로 기대주 지현준과 영화배우 문소리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 화제로 떠올랐다. 최근 몇 년 간 주요 연극상을 휩쓴 지현준은 “드라마 두 개 영화 한 편 연극 한 편”을 거절하고 주인공 김기영 역을 맡았다. 문소리는 2010년 ‘광부화가들’ 이후 6년만에 김기영의 처 장마리 역으로 무대에 섰다.

두 배우는 19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작업”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소리가 “김영하 작가가 ‘나를 셰익스피어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각색하라’고 했다는데 정말 우리 마음대로 하고 있다”며 농을 던진다.

양국 예술인이 만난 만큼 제작과정이 만만치 않다. 연출가와 극작가 발레리 므레장이 공동 각색한 대본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리딩 연습한 후 완전히 다시 써서 다시 한국어로 바꿨다. 독백과 방백, 대화체가 구분되지 않는 프랑스어 특성을 감안해 이 대본을 연습과정에서 다시 수십 번 뜯어 고치고 큰 에피소드도 수정한다. 연출가는 원작과 차별화하는 지점에 대해 “스파이는 허상 속에서 살고 있고, 살기 위해서 또 다른 허상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람”이라며 “허구와 허상 그리고 현실의 모든 것을 담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다른 배우들보다 한 달 먼저 시작해 작은 이미지까지 다 준비했다가 (극중에)자연스럽게 튀어나오게 하는 스타일”이었던 지현준은 이번 작품에서 먼저 준비한 ‘작은 이미지’들을 연습 중 다 깨부수었다. “경계에 선 인물을 연기하다 보면 제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게 되는데, 이번 작품은 경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극복의 방안이 되더라고요.” (지현준)

“연극을 하면 저보다 괜찮은 사람들을 연기하고, 그래서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돼 가는 거 같다”는 지현준에게 문소리는 “넌 원래 좋은 사람”이라고 추켜세운다. “우리 안에 좋은 면이 있고 그걸 잘 키우면 되는데 딴 데서 뭘 찾으려는 순간이 있어요. 불안해서 자기를 못 들여다보고, 확신이 없어서. 나도 그랬던 거 같아요. 근데 자꾸 좋은 작품을 하다 보면 그 좋은 사람이, 멀리 있는 파랑새가 아니구나 느끼게 되거든요. 이 작품도 그런 작품이 돼야 할 텐데.”(문소리)

한불 합작 연극 '빛의 제국' 주인공을 맡은 배우 문소리, 지현준.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한불 합작 연극 '빛의 제국' 주인공을 맡은 배우 문소리, 지현준.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연출가가 흥미롭고 확신이 들어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는 문소리는 “연출이 고수하는 방식이 있으면 우리는 우선 같이 가줘야 한다”며 배우와 연출가 사이 다리 역할을 자처한다. 전문 통역사가 전달하지 못하는 배우들의 감정선을 영어로 연출가에게 대신 전해주는 문소리를 두고 지현준은 “엄마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극중 아내 장마리로 마주할 때는 “온 몸의 땀구멍이 다 따가워지는” 배우라고.

지현준이 영화 감상평부터 연습실에서의 배려, 대사를 주고받을 때의 긴장 등 문소리와 주고받은 모든 것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자 그녀가 “오늘 내가 너를 어떻게 쳐다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몸을 꼰다. 그리고 은근 슬쩍 던지는 칭찬. “강함 안에 섬세한 면이 있어요. 이런 배우인가? 싶으면 또 저런 모습도 있고. 그리고 자기가 구축한 캐릭터를 한 순간에 깨기가 쉽지 않은데 금방 깨고 다른 모습으로 연기하더라고요. 배우로서 큰 태도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연극 ‘빛의 제국’은 분단과 남파 간첩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현대사회 개인의 고독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그리는 데 주력한다.“분단과 간첩이라는 상황이 관객이 느끼기에 본인의 삶과 거리를 느낄 만한 이야기거든요. 무대니까 저런 얘기하나 보다 하고. 한데 김기영이든 장마리든 우리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 각자의 삶 속에서는 주변의 다른 일보다 자신의 일이 가장 크다는 것. 그런 것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으면 해요.”(문소리)

3월 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1644-2003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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