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파이어 앳 시’ (Fire at sea)가 지난 20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66회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최고상을 받기는 베를린영화제 역사상 처음이다.
‘파이어 앳 시’는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을 배경으로 열 두 살 소년이 바라본 난민 사태의 위기를 다룬 영화다. 미국 유명 배우 메릴 스트립이 위원장을 맡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단은 ‘파이어 엣 시’가 현 유럽의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는 난민 사태를 조명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스트립은 “‘파이어 앳 시’는 이야기의 신중한 전개와 충격적인 영상의 대범한 활용을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며 “이 작품은 시의적이면서 꼭 필요한 영화”라고 ‘파이어 앳 시’의 황금곰상 시상 이유를 밝혔다.
영화에 등장한 람페두사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몰렸던 주요 밀항지로, 많은 난민들이 바다를 건너려다 이 곳에서 빠져 죽은 아픔을 지닌 곳이다. 영화를 연출한 지안프랑코 로시 감독은 “이 영화로 난민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싶었다”며 “우리 모두 난민 비극에 책임이 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비극의 증거물”이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는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화에 등장한 바다를 건너는 이민자들이 죽는 건 가슴 아픈 일”이라며 “난민 위기는 유대인 대학살 이후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라며 난민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다.
로시 감독은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에 정착한 이민자다. 미국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한 그는 지난 2013년 로마의 한 순환도로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성스러운 도로’ (‘Sacro Gra’)로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로 세계 3대 영화제(칸국제영화제 포함) 중 두 곳에서 최고상을 받기는 로시 감독이 처음이다.
심사위원대상(은곰상)은 ‘데스 인 사라예보’를 만든 유고 출신의 다니스 타노비츠 감독에 돌아갔다. 이 영화는 호텔 구성원들의 파업을 제1차 세계대전과 오버랩시켜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의 갈등을 다룬다. 감독상(은곰상)은 ‘씽스 투 컴’을 만든 프랑스 출신 미아 한센 로브 감독이 받았다. 여성이 50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겪게 되는 삶의 굴곡을 다룬 작품으로, 이자벨 위페르가 열연했다.
남우주연상(은곰상)은 ‘헤디’에서 열연한 튀니지 배우 마즈드 마스투라에게, 여우주연상(은곰상)은 ‘더 코뮨’ 에서 열연한 덴마크 배우 겸 가수 트리네 뒤르홀름에게 각각 돌아갔다. 알프레드 바우어상(은곰상)은 ‘어 럴러바이 투 더 소로우플 미스터리’를 연출한 필리핀 감독 라브 디아즈가 받았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기법을 정착시킨 알프레드 바우어 촬영감독의 이름을 딴 이 상은 독창적인 영화에 주는 특별상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한국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2013년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경쟁부문에 오른 게 마지막이었다. 대신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가 비경쟁부분인 파노라마 부문에, 이동하 감독의 ‘위켄드’가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부문에,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가제)이 제너레이션 K플러스 경쟁부문에 각각 초청돼 현지에 소개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는 23편의 후보작이 올라 경합을 벌였다. 영화제는 21일 막을 내린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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